“새 정부 들어 대형 참사는 없었다”던 안전행정부 장관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경주에서 꽃봉오리같은 청춘들이 이유 없이 스러져갔다. 해당 사고의 반복을 막겠다고 PEB 방식 안전기준을 강화하자마자 지옥과도 같은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서해페리나 남영호, 충주 유람선 사고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치떨리는 기시감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무력감에 빠져있다. 슬프게도, 세월호 참사는 2014년 우리 대한민국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쳐다보기 싫은 거울’이다.

이 배가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될 때 총 톤수는 5997톤이었지만 개조작업으로 6586톤으로 늘었다. 18년이 흐른 2012년 10월 청해진해운에 매각된 후에는 다시 개조작업을 거쳐 6825톤으로 늘었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업계의 고충을 감안해’ 여객선 제한 선령을 25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하는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선령 18년의 퇴역 선박을 국내에 도입하더라도 채산성을 맞출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 개조 후 한국선급에서 시행한 안전검사에서는 ‘복원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됐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2차검사에서는 보완 없이 통과됐다. 오뚝이처럼 무게중심을 잡아줘야 할 복원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늘어난 덩치만큼 균형추 역할을 할 평형수의 역할도 커져야 하는데, 청해진해운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묵살했다는 정황과 증언도 나오고 있다. 누덕누덕 여기저기 살을 붙이는 동안, 늙은 배는 속으로 병들어가고 있었다.

1년 계약직 선장을 비롯해 선박직 15명 중 9명이 계약직이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계약직=비전문성’이라는 논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고용불안과 정규직(비계약직)과의 갈등에 의한 전문성·직업윤리 부족은 뚜렷한 인과관계를 갖는다. 탑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선박직을 끼웠다 빼내는 나사쯤으로 치부하는 경영진의 인식, 이윤과 효용극대화라는 탈을 쓴 자본의 탐욕이 원칙과 안전이라는 기본적 가치마저 구축(驅逐)해버린 것이다.

탑승객 보호하라고 쥐어준 선박구조 지식과 ‘무전기’를 독점한 세월호 선박직 직원들이 함교에 모여 있다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구조선에 오른 것과, 선박 운항관리와 안전진단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한국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이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 해 화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기본적인 윤리의식까지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자율성을 함양하고 규제를 푼다는 논리로 아무런 준비없이 선심 쓰듯  ‘그들만의 판’을 만들었을 때, ‘누가’, 그리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왕좌왕 무게중심을 못잡고 비틀거리는 정부의 소위 ‘콘트롤타워’의 무능, 엄청난 예산을 들여 거창한 각종 ‘매뉴얼’을 만들어놓고도 일사분란은커녕 허둥지둥 비틀거리기에도 버거워하는 공무원들, 새까맣게 가슴이 타들어간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인증샷’을 떠올리는 무개념 공직자, 당장 죽어나가게 생긴 가족들 옆에서 버젓이 ‘황제라면’을 즐기는 장관, 그런 ‘장관님 오신다’고 실종자 가족에게 전해야 직성이 풀리는 공무원들까지…. 전문성도, 줏대도, 철학도, 인간으로서의 예의도 없는 사람들은 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의심을 사고도 남는다. 수많은 대형사고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우리나라’의 시스템과 전문성, 의식수준에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싫어도, 이제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다. 초압축성장의 과정에 매몰돼 있던 기본적 가치를 처음부터 다시 들춰내고 공부해야 한다. 물건을 만들고 집을 짓고 배를 띄우는 것이 궁극으로 무엇을 위한 일인지, 얼마나 큰 효용을 주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일인지, 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안전장치를 만들고, 가능성도 희박한 위기를 상정해 훈련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보험까지 드는지 배워야 한다. 뼈아프게도 우리에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생생한 실제 사례가 있다. 모자란 것은 다른 나라의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 기본도 다져지지 않은 맨살에 ‘창조’라는 분칠이 먹힐 리 없다. 언젠가 화장은 들뜨고 분은 번지게 돼 있다. 먼저 모방해 독성(毒性) 발현의 가능성을 최소화한 후, 그렇게 피부를 단단하고 건강하게 만든 후라도 새 돈벌이를 ‘창조’할 기회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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