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마다 청구되는 병원비가 많을 때는 백만원이 훌쩍 넘었다. 전답을 거의 다 팔고도, 큰 수술 한번 못 받아보고 1년만에 돌아 가셨다. 그때 옆에는 교사 신분인 환자가 한명 있었는데, 보험이라는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벌써 30년전 아버지 이야기다.

1989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의료보험 실시는 국민의 삶을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 영유아사망률이 크게 줄었고, 국민의 평균수명도 빠르게 늘어났다. 의료사각지대를 완전히 해소시키지는 못했지만, 병원 문턱이라도 밟아보고 죽었으면 하는 원망과 자조는 사라졌다. 배탈, 감기, 타박상으로 병원을 찾는다는 것은 공공의료보험이 도입되기 전에는 꿈같은 얘기였고, 민간요법이 그나마 접근할 수 있는 의료행위의 전부였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 3800여개에 이르는 비급여 항목을 줄여, 건강보험 보장률을 2022년까지 70%로 끌어올림으로써 의료비로 가계가 파탄나는 메디푸어(Medi-Poor)를 막겠다는게 핵심이다.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급여항목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의료비 본인부담률이 OECD국가중 멕시코 다음으로 높다. 그래서 비급여항목을 줄여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고, 가계부담을 줄이겠다는 문재인 케어의 방향은 옳고도 당연하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80%는 돼야하는데,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일리가 있다. OECD국가의 건강보험 보장률 평균이 78%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5년 뒤인 2022년에 70%를 보장하겠다는 정책은 답답함마저 든다.

그러나 또 다른 한쪽에서는 재원대책도 없는 장밋빛 환상, 천사의 가면을 쓴 포퓰리즘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세금폭탄이 될 거라며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야당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문재인정부도 재원대책을 국민들에게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 5년간 30조6000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에서 재원조달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해명만으론 야당의 공세에 대응하기 힘들다. 자칫 사업의 부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 차라리 보장률을 빠른 시일 내에 80%로 올리겠으니, 보험료를 조금만 더 부담해달라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턱대고 보험료를 올리자는 소리는 아니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률과 함께 보험재정 부실은 민간보험을 키우는 요인이다. 반대로 민간보험의 번성과 난립은 공공의료 서비스를 약화시킬 수 있다. 4인가족 기준으로 한달 몇십만원의 실손보험 등 상당수의 가계가 민간보험료를 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비급여항목이나, 목돈이 드는 질병에 대비하기 위한 고육책인 셈이다. 민간보험으로 지출되는 의료비의 일부만이라도 건강보험이 흡수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면 국민에게도 국가에도 서로 좋은 일이다.

건강보험이 부실화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서민들이다. 국가의 공공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면, 이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오바마케어와 트럼프케어를 둘러싼 미국내 논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국가와 국민이 함께 지켜야 할 공공의 자산이다.

문재인 케어. 옳은 정책이다. 세금폭탄이라고, 속빈 포퓰리즘이라고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보험료가 오르는 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건 국민건강보험이 부실화되는 것이다. 국민들의 협조를 구해 국민들과 함께 더 강화된 ‘문재인 케어’의 길로 나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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