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업체인 A사는 지난해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과거에 유행했던 종이인형들을 모아 단행본을 펴내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종이인형 도안을 모으던 중 난관에 부딪혔다. 여러 도안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 도안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수적인데, 오래전에 만들어진 도안이라 저작권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저작권자를 알아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A사는 저작권자의 등기부등본을 찾아보는 등 노력했지만, 결국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도안이 대부분이었다. 사업을 포기하려던 A사는 우연히 ‘법정허락제도’를 알게 됐고, 비용을 지불해 도안을 활용할 수 있었다. 출판한 그림책은 큰 인기를 얻으며 불티나게 팔렸다.

저작권자 알 수 없는 저작물, 허락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

저작권자를 알 수 없는 저작물을 사업에 활용하고 싶은 개인이나 스타트업이 있다면, A사의 경우처럼 법정허락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심의조사팀 정희정 업무총괄담당자는 22일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콘텐츠코리아랩(CKL) 기업지원센터가 주최한 ‘콘텐츠 스타트업 전문분야 특강:저작권자를 알 수 없는 저작물, 꼭 허락받고 써야 하나?’ 설명회에서 “저작권자를 몰라 가공을 망설이던 저작물이 있다면, 법정허락제도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법정허락제도(Statutory license)는 지식재산권자가 누군지 모르는 저작물을 이용하려는 경우, 일정 절차를 거쳐 보상금을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앞서 소개한 A출판사는 법정허락제도를 통해 묻힐 뻔한 사업아이템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저작재산권자를 알 수 없는 저작물을 각종 콘텐츠창작에 이용하려는 기업이나 개인이 늘면서, 법정허락제도 이용건수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 2건에 불과했던 이용건수는 2014년 5건, 2015년 14건 그리고 지난해엔 136건으로 급증했다.

신청요건…저작권자를 찾기 위한 ‘상당한 노력’ 있어야

그러나 법정허락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당한 노력’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저작권법은 ‘상당한 노력’ 요건 네가지를 제시했다. ①저작권등록부 조회 ②해당 저작물의 저작권신탁관리업자(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에게 저작재산권자나 그의 거소를 조회하고, 저작권신탁관리업자가 없는 경우 해당 저작물 이용자중 2명 이상에게 조회 ③권리자 찾기 정보시스템에 10일간 공고 ④국내정보통신망 정보검색도구를 이용해 저작재산권자나 그의 거소 검색 등이다.

열거한 ‘상당한 노력’을 했음에도, 저작권자를 알 수 없거나 연락이 닿지 않아 허락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만 법정허락제도를 신청할 수 있다. 단, 과거에 이미 이용승인이 난 저작물이라면, ‘상당한 노력’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법정허락제도를 신청하면 된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찾기 사이트(https://www.findcopyright.or.kr/main/main.do)에서 신청하면 된다. 신청시 이용승인신청서, 이용승인신청명세서, 보상금 산정 내역서, ‘상당한 노력’ 절차 수행 증빙서류 등을 준비해야 한다. 신청이 되면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신청내용을 공고하고, 위원회 심의를 거쳐 승인 또는 기각여부를 결정한다. 이용승인을 받으면 보상금 공탁을 거쳐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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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금은 저작권을 이용하는데 내는 비용이라 생각하면 된다. 저작권자가 누군지 모르는 저작물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오남용하는 것을 막고, 향후 저작권자를 찾으면 정당한 보상을 하기위해 마련됐다.

보상금은 법정허락 신청자가 산정해 제출하면, 심의위원회가 적절한 수준인지 평가한다. 관련 신탁관리단체의 사용료 금액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나, 사용료 금액을 알 수 없는 경우 시장에서 통상적으로 거래되는 금액 수준에 맞추면 된다. 확정된 보상금은 해당 주소지 관할 법원 공탁소에 공탁하면 되고, 공탁서 사본을 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승인까지 통상 40일 소요…외국인저작물은 해당 안돼

모든 과정이 처리되는데 통상 40일이 걸리고, 저작물 1건당 1만원의 신청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보상금과는 별도다.

단, 외국인저작물은 법정허락제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해당 저작물을 원본 그대로만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변형하면 안된다. 예컨대 이미지의 경우 원저작물에 글자를 첨부할 수 없고, 색감을 변형할 수 없으며, 영상물로 제작해서도 안된다.

정희정 업무총괄담당자는 “2015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이용승인 결정 이후 관보에 게재하지 않아도 된다. ‘상당한 노력’ 절차도 3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됐다”며 개인이나 기업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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