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사회적경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회적기업가가 예를들어 취약계층을 돕는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이때 디자인 요소가 적재적소에 반영돼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가들이 마음편히 찾아 디자인을 의논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디자인 전문회사는 드문 실정이죠.”

디자이너로, 경영컨설턴트로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의 길을 걷던 이신재(왼쪽)·최혜진 공동대표는 전문디자이너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를 고민하다, 사회적기업 ‘㈜글자와 기록사이’를 설립한다.   ©중기이코노미

디자이너로, 경영컨설턴트로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의 길을 걷던 이신재·최혜진 공동대표는 사회적기업들과 유대관계를 맺어오다, 전문디자이너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를 고민한다.

사회적기업 설립…디자인 문턱을 낮추다

이 대표와 최 대표는 사회적기업가에게 필요한 디자인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기로 마음먹고, 지난 2015년 2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에 지원해 선정됐다. 그리고 같은해 12월 ‘공익을 디자인하고, 디자인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바꾼다’는 미션을 가지고 ‘㈜글자와 기록사이’를 설립했다. 이후 2016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고, 올해 7월 서울문화재단 제8기 디자인풀에 선정됐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소셜.d.상담소’는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사회적경제 구성원인 사람과 기관에 무료 디자인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 사회적기업가들은 자신이 기획한 아이디어를 글자와 기록사이와 함께 발전시키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시각적 콘셉트를 도출함으로써 프로젝트로 실현되는 이미지를 사전에 그려볼 수 있다.

또 글자와 기록사이 사업의 한 축은 일상을 역사로 기록하는 ‘기록형 독립출판’이다. 글자와 기록사이의 시선으로 지역안내서, 문화유산, 잊혀져가는 것 등을 써내려간 기록물을 출판한다. 지난 6월 출간한 ‘동경책방기’는 최 대표가 일본 도쿄를 수차례 오가고 다리품 팔면서 도쿄의 서점, 북카페, 문구숍 등 69곳에 대한 생생한 정보와 도쿄의 대형서점 그리고 미술관 등의 자료를 묶어낸 책이다. 동경책방기는 인터넷서점 YES24에서 화제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글자와 기록사이는 매년 2종 안팎의 독립출판물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나눔굿-즈’는 공정한 출판생태계와 책읽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관련된 문구소품류 등을 제작·판매하는 사업이다. 수익금의 50%는 취약계층에 기부한다. 그동안 학대아동을 위한 바자회, 미혼모 자립지원 문화프로그램,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정심여자직업학교 등에 문구류 등을 기부했다.

한국근현대 문학을 소재로 만든 ‘나눔굿스’ 노트 세트. 판매이익의 절반은 사회복지시설, 새터민청소년학교 등에 기부한다.<사진=글자와 기록사이>

이밖에도 글자와 기록사이는 사회적경제 기업 및 중소기업·소상공인·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디자인교육 서비스도 제공한다. ▲디자이너의 시각과 관점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구체화하는 ‘디자인씽킹’ ▲우리동네 역사책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책만드는 디자이너’ ▲문학작품을 필사하는 과정을 통해 집중력을 기르고 정서함양도 도모하는 ‘느리게 책 읽는 시간’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디자인’할 것

글자와 기록사이는 최근 필사책 ‘읽다, 쓰다’를 출간했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 총 69편이 수록된 ‘읽다, 쓰다’는 마음을 울리는 문구들을 손으로 옮겨 적으며 마음의 휴식을 주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최혜진 대표는 “그동안 진행해 온 나눔굿-즈 프로젝트가 판매수익금을 기부하는데 그쳤다면, ‘읽다, 쓰다’는 수익금을 기부하는 것 뿐만아니라 취약계층이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정서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 총 69편이 수록된 ‘읽다, 쓰다’는 마음을 울리는 문구들을 손으로 옮겨 적으며 마음의 휴식을 주기 위해 만든 필사책이다.<사진=글자와 기록사이>

‘읽다, 쓰다’는 지난 7월 한달간 네이버 해피빈 공감펀딩을 진행했다. 펀딩을 통해 총 600여만원의 후원금이 모아졌고, 글자와 기록사이는 펀딩에서 발생한 후원금중 50%를 취약계층 관련단체를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글자와 기록사이는 이밖에도 ▲서울문화재단, 문화예술사회적기업 기억발전소와 함께 한 ‘메모리[人]한강’ 전시디자인 ▲양천사회적경제생태계조성사업단과 함께 한 양천구 관내 사회적경제단체의 카드뉴스 제작 ▲양천구내 사회적기업들과 함께 한 싱글 시니어 관련 사업 진행 ▲소셜벤처 허스토리와 함께 한 작은 자서전 사업 등 사회적기업과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디자인(design)의 어원은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로, ‘계획하다, 설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최혜진 대표는 “사회적경제 기업은 우리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설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글자와 기록사이는 이러한 사회적가치를 실현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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