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국내에 나고야의정서(ABS)가 발효됨에 따라 관련기업은 내년 8월부터 생물자원 제공국의 법 규정에 따라 허가 신청과 이익공유 계약을 맺고, 우리정부에 이를 신고할 의무가 부과됐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관련기업 대부분이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업계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에 정부가 관련업계에 적극 홍보하고, 업계 역시 별도의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등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나고야의정서, 中企의 경우 잘 알고 있는 사람은 1~2명뿐”

㈜또르르 생체모방과학연구소 윤길영 대표이사는 31일 한국바이오협회와 대한화장품협회가 주최한 ‘화장품업계 나고야의정서 인식제고 세미나’에서 “최근 나고야의정서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고는 하나 실제 현장에서 보면 중소기업의 경우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은 1~2명뿐이고, 그 외는 잘 알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최근 화장품트렌드가 천연자원, 유기농 등으로 나고야의정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기업의 부담이 대폭 증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나고야의정서는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공정·공평하게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채택된 국제협약이다. 1993년 체결된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른 것으로 2010년 일본 나고야 총회에서 채택됐다. 2014년 10월 의정서 발효요건인 50개국 비준을 충족함에 따라 효력이 발생, 한국은 지난 8월17일 98번째 당사국이 됐다. 다만 관련기업의 혼란과 피해가 예상돼 1년간 국내법 시행은 미뤄진 상황이다.

의정서 위반시 처벌…韓, 2014년기준 로열티부담금 2000억

의정서에 따르면 이용자가 생물유전자원 접근시 자원보유국으로부터 사전통보승인(PIC)을 받아야 하고, 자원이용으로 발생한 이익은 상호합의조건(MAT)에 따라 공유해야 한다.

예컨대 외국인(이용자) 등이 특정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국내 유전자원에 접근하는 경우, 이를 제공국 책임기관에 미리 알려 허락을 구해야 한다. 승인이 나면 이익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상호합의조건을 체결한 뒤, 제공국이 마련한 절차에 따라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 외국인은 절차 준수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자국(이용국) 점검기관에 모든 사실을 신고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모든 것은 의무조항이기 때문에 이를 위반하는 이용자는 제공국 국내법에 명시된 처벌을 받게 된다.

생물유전자원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유전자원을 활용하는 관련산업 분야에서 생물자원 수입원가 상승은 물론, 나고야의정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소송과 같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 UN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2014년기준 나고야의정서로 인해 외국 생물자원을 이용하는 대가로 지불해야할 로열티 부담금은 연간 2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국내기업의 수입 유전자원 최대 조달국인 중국은 ▲외국기업이 중국의 생물자원 이용시 반드시 중국기업과 합작 진행 ▲생물자원 보유인과의 이익공유와는 별도로 기금명목으로 연간 이익발생금의 0.5~10% 추가 납부 ▲위반시 5만~20만위안의 벌금부과 등 나고야의정서를 넘어선 강도높은 규정을 시행할 것으로 예상돼 국내기업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250개 업체·연구자 설문…‘대응책 마련했다’는 답 없어 

그러나 국내 관련기업 대부분이 나고야의정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환경부가 발표한 250개 관련업체 및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나고야의정서 인식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응책과 관련 ‘현재 대응책 마련 계획 없음’이 49.1%로 가장 높았고, ‘동종업계 동향 주시중’이 42.9%, ‘대책 마련중’은 8%에 불과했다. ‘대응책을 마련했다’는 응답은 전혀 없었다. 나고야의정서로 인한 피해에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조사결과다. 

이에 정부가 전담기관을 설립해 관련업계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분야별 맞춤형 대응책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게 윤 이사의 조언이다.

현재 의무이행과 관련해 정부가 시행중인 지원방안은 나고야의정서에 대한 상담이 대부분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8월말까지 약 7년간 진행한 의무이행 지원 총 422건 가운데 153건(36.2%), 3분의 1이 상담이다. 그마저도 44건은 비준이 발효되는 올해 이뤄졌다. 이어서 ▲뉴스레터(131건) ▲컨설팅(96건)이고, 나머지는 세미나 또는 포럼 정도다. 지난해 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밝힌 국내 화장품 관련 기업수만 7000개를 넘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터무니없이 적은 수치다.

이날 세미나 현장에서 만난 한 기업 관계자는 “업계가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상담도 적은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고 “의무 위반으로 생긴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이 겪어야 하는데, 이같은 사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으면 문의가 적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윤 이사도 “정부가 전담기관을 만들어 관련데이터를 제공해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와 연구계, 각각 차별화된 대응책을 마련해야

더불어 나고야의정서 이행과 관련해 산업계와 연구계가 각각 차별화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환경부의 ‘나고야의정서 인식도 조사 결과’에도 업계에 따라 나고야의정서 인지도, 유전자원 조달국, 요구사항 등에서 차이가 있었다. 나고야의정서 인지도의 경우 산업계는 60.1% 수준이었지만, 연구계는 79.1%로 약 20%p가량 인지도가 더 높았다. 유전자원 조달국가 역시 연구계는 미국과 일본이 80.6%로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산업계는 중국이 49.2%로 가장 높았다. 업계별로 상이한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