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에 이어 ‘발암물질 생리대’ 문제가 불거지면서 ‘케미포비아(chemiphobia)’, ‘노케미족(no-chemistry族)’과 같은 단어가 확산되고 있다. 케미포비아는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노케미족은 세제·치약 등 생필품이나 식품을 선택할 때 화학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고르는 사람을 말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 이후 흔히 쓰였는데, 최근 연이어 터지는 화학물질 관련 사고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용된 화학물질은 약 4만4000종에 이른다. 연간 새로이 시장에 진입하는 화학물질도 3000종에 달한다 하니,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직접 섭취하는 식품 뿐만 아니라 화장품·위생용품 등 생활용품, 가전제품 등 그 용도도 다양하다.

문제는 화학물질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정성분들이 비만·당뇨 뿐만 아니라 신경기능 장애나 나아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유통 중인 화학물질 가운데 일부 유해성이 파악된 화학물질은 7000종에 달한다.

특히 국내의 경우 관련 사고가 터질 때마다 해외기준보다 한참 낮은 기준치, 관련규정 부재, 정기적인 검사 불이행 등 제도적 허점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이에따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개정안’을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화평법은 2013년 5월 제정된 것으로 신규화학물질 또는 연간 1톤 이상 제조·수입되는 기존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를 의무화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한국시장에 진입하는 화학물질 확인과 유해성 등 안전 사용에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확보 공유하고, 생활용 화학제품으로 인한 독성 피해로부터 국민건강과 환경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다.

화학기업은 2019년까지 화학사고 장외영향평가서 제출, 취급시설의 배치 및 설치 기준 충족, 화학물질 등록 등의 의무를 취급물질의 양에 따라 연차적으로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기업이 성분표를 가져오면 당국이 성분 데이터를 보고 유해성 여부와 정도를 판단하는 식이다. 연간 1톤 이상 유통되는 화학물질 중 정부가 지정한 2000여개만 환경부에 보고하면 되고, 기업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무엇인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기존 화평법은 유해성심사에 필요한 자료제출 명령을 위반한 자에 대한 처벌만 규정돼 있을 뿐, 거짓 또는 허위의 자료를 제출한 경우에 대해서는 특별한 처벌규정이 없다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에따라 해당 내용을 보완하고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관리 규정을 대폭 강화한 개정안이 지난달 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는 모든 기존화학물질이 등록된다. 기존에는 국내에 연간 1톤 이상 제조·수입되는 기존화학물질에 대해 등록대상물질을 3년마다 지정·고시하는 체계였다. 그러나 등록기한을 유통량에 따라 단계적으로 규정해 1000톤 이상과 발암성물질은 1단계, 100~1000톤 미만은 2단계, 10~100톤 미만은 3단계, 1~10톤 미만은 4단계로 나눠 등록하도록 했다. 즉, 국내 유통량의 99.8%에 해당하는 1000톤 이상 물질과 국민 건강상에 위해우려가 높은 발암성물질은 최대한 빨리 등록해 피해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등록대상물질은 510여종에서 7000여종으로, 신고물질 범위도 유해화학물질 800여종에 위해우려물질까지 포함한 1300여종으로 대폭 늘었다. 또 유해화학물질(유독물질, 허가·제한물질 등)을 함유하는 제품은 사전에 신고해야 하고, 국민건강에 위해가 우려되는 발암성·생식독성·돌연변이성 물질 등은 ‘중점관리물질’로 지정·고시하며, 이를 함유하는 제품의 성분과 함량 등을 신고해야 한다. 화평법 개정안은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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