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을 이어 2대째 홍익문고를 이끌어가고 있는 박세진 대표는 홍익문고를 지켜준 건 ‘시민들의 힘’이었다고 말한다.   ©중기이코노미

서울 신촌역 3번 출구를 나와 연세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올해 60년을 맞은 홍익문고가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다. 중기이코노미가 찾은 날, 홍익문고 앞 ‘달려라 피아노’에는 한 외국인이 앉아 거리를 음악으로 채우고 있었다. 이제 막 익어가는 가을햇살 아래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책 한권을 집으러 홍익문고에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가업을 이어 2대째 홍익문고를 이끌어가고 있는 박세진 대표는 홍익문고를 지켜준 건 ‘시민들의 힘’이었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홍익문고가 이곳, 연세로에 문을 연 건 1957년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가장, 故박인철 창업가는 처음에는 리어카에 책을 싣고 행상으로 시작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책을 놓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이었다.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문을 연 홍익책방은 이제 환갑을 지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손님 거래처 직원 가족을 이롭게 하라’ 가업 이은 홍익문고

1957년 판잣집에서 문을 연 홍익책방은 이제 환갑을 지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사진=홍익문고>   ©중기이코노미

“아버지께서 ‘홍익’이라는 말을 서점 이름으로 지을 때, ‘손님·거래처·직원·가족’을 이롭게 하면 그것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독한 구두쇠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평생 가난과 싸우며 지킨 홍익서점에는 그 손때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없는 책이 없다는 홍익문고의 책장들은 모두 박 창업자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서점 가장 꼭대기에 작업장을 만들고,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공들여 만든 책장들에는 분야별 책들이 가득히 꽂혀있다.

신촌의 약속 장소…‘시민의 힘’으로 철거위기 넘겨

박 대표가 2009년 가업을 이어받아 서점 운영을 시작하고 얼마 뒤 위기가 찾아왔다. 2012년 신촌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돼 건물이 헐리게 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없는 책이 없다는 홍익서점의 책장들은 모두 창업자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중기이코노미

“당시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일대를 사들일 만큼 자본을 가진 것도 아니고, 시에서 정한 정책을 개인이 막아낼 재간이 없었죠.”

‘강남에는 뉴욕제과, 신촌에는 홍익문고’라고 할 만큼 홍익문고는 약속장소로 상징적인 곳이었다. 이대로 허물어지게 둘 수 없다며 지역 주민들이 나섰다. 서대문지역 시민단체들의 서명운동이 이어졌으며, 이와 함께 당시 문석진 서대문구청장과 정창영 연세대 총장도 힘을 보탰고, 홍인문고 인근이 재개발지역에서 제외됨으로써 철거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 지역이 재개발구역에서 해제되고 홍익문고는 극적으로 살아남았죠. 그런 일을 겪고나니 홍익문고가 저 개인의 사업장이 아닌, 역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서대문구는 2013년 홍익서점 앞 거리를 ‘문학의 거리’로 지정하고 윤동주, 최인호, 김남조, 고은 등 한국의 대표문학가 15명의 핸드프린팅 명판을 거리에 새겨 넣었다.   ©중기이코노미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100년 이어가는 서점 만들 것”

박 대표는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100년 서점 홍익문고’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정하고, 서점 앞에 누구라도 쉬어가며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를 설치했다. 지금은 홍익문고만큼 유명해진 이 ‘달려라 피아노’에는 매일 시민들이 찾아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으로 거리를 채우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서점의 문화와 존재 이유가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책만 있는 곳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홍익문고에서는 책이 아닌 물건 예를들어 연필하나 공책하나 판매하지 않습니다.”

서점은 손님들에게 필요한 책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박 대표는 강조했다. 손님을 끌기 위해 다른 물건을 들이거나 휴식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겠지만, 책을 사러왔다가 필요한 책이 없다면 손님에게 그것만큼 허탈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책을 채워 넣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그것이, 서점이 가장 먼저 제공해야하는 서비스라는 박 대표의 신념 때문이다.

홍익문고 앞 ‘달려라 피아노’에서 한 외국인이 앉아 거리를 음악으로 채우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홍익문고가 100년이 되는 해는 제가 90살이더군요. 그때까지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이 서점을 이끌어가고 싶습니다. 그 이후에는 제 아들이 이어준다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해 22살인 아들이 박 대표만큼이나 이 서점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넌지시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점을 운영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며칠 뒤 홍대 지하철역에 들어서는 영풍문고와 합정역에서 운영 중인 동양최대규모 교보서점 등 첨단화된 대형서점들도 위협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박 대표는 서점의 존재이유에 충실하고, 성실함과 사명감으로 견뎌내는 것이 또 다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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