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산업 발전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닌 별도의 지원·관리 기관이 필요하고, 또 애니메이션 발전기금 등 별도의 기금을 조성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이병민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과 중소기업중앙회가 13일 공동주최한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입법공청회’에서 “애니메이션은 가치와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인데, 한국은 관련법 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중소·영세기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애니메이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정부가 법을 제정하고 통합된 지원기관을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애니메이션은 대표적인 ‘원 소스 멀티 유스’(OSMU:One Source Multi Use) 산업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해 판매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미키마우스가 1928년 처음 제작된 이후 올해까지 90년간 완구, 의류, 팬시, 생활용품, 가전제품, 주얼리, 도서, 음반, 영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부가가치를 거둬온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최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홀로그램 등 신기술과도 융합이 가능해지면서 애니메이션 한편이 거둬들일 수 있는 부가가치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또 양질의 일자리 창출효과도 있다. 다른 산업에 비해 투입 비용대비 인건비 비율이 높고,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기술이 대체하기 어려운 창조산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정규직 비율은 72.9%(3448명)로 비정규직(27.1%, 1280명)의 2.7배에 달한다. 남녀간 구성비 격차도 크지 않다. 2015년 기준 남성과 여성 종사자 간 비율은 각각 52.3와 47.7%로 양성이 평등한 고용환경이다.

이와함께 애니메이션은 문화할인율이 낮아 전 세계로 문화를 쉽게 전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화할인율은 특정 국가의 문화가 다른 문화권으로 건너갈 때 국가간 문화, 관습, 언어 등의 차이로 생기는 수용 격차를 말한다. 문화권 간 격차가 크지 않아 다른 문화 수용이 용이한 경우, ‘할인율이 낮다’고 표현한다. 반면, 문화권 격차가 커서 다른 문화의 수용이 어려운 경우, ‘할인율이 높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문화할인율이 낮은 대표적인 장르다. 곧 국내 관광업 활성화, 국가 경쟁력 제고 등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은 열악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6 콘텐츠산업통계’를 보면, 지난해 애니메이션 산업 사업체당 평균 매출액은 12억원으로 대부분 중소기업 또는 영세기업이다. 물적 담보가 부족하고, 자금 조달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다시말해 아이디어가 있어도 제작비가 없고, 당장 먹고살기 바쁘다보니 수익성이 높은 영유아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매달리는 경우가 적지않다. 이 교수는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 대다수가 영유아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편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열악한 산업여건은 우수·전문인력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아울러 캐릭터 등의 불법복제가 있어도 정보나 인력, 비용 등이 부족하다보니 손놓고 당하기 일쑤다. 세계적인 ‘디즈니’나 ‘드림웍스’ 등과 같은 블록버스터급 킬러콘텐츠(시장에 영향력 있는 핵심 콘텐츠)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 교수는 정부가 나서 관련 법을 제정하고, 별도의 기금을 마련해 산업을 체계적·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애니메이션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채 지원책을 세우고 있어 제대로 된 지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업계 관계자들은 애니메이션 지원을 영화진흥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맡고 있는데, 업계의 요구를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한다. 지원책만 놓고 보면 정부는 애니메이션을 별도의 산업이 아닌 방송물과 영화의 하위장르 정도로 인식하는 모양새다. 특히 상업성 논리에 의존하지 않는 양질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선 공공의 지원이 필수적인데, 그렇지 못하다. 애니메이션 산업의 해외자본 의존도도 매해 늘어나는 상황이다.

세계시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주요 경쟁국으로 꼽히는 캐나다의 경우, 문화부가 관련 정책을 세우면 연방정부 산하기관인 ‘국립영화제작소(NFBC)’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통해 별도로 지원한다. 중국의 경우 2001년부터 중앙정부가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과 관련한 정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종합적인 지원책 수행을 위해 문화부, 과학기술부, 재정부, 교육부 등 10개 부처가 모여 별도의 회의를 진행한다.

이 교수는 “애니메이션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제작사가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며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산업이 아니다. 미래세대인 아동·청소년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교육적 가치, 해외에 수출하기 쉽다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 등을 포함하는 공공재로 봐야한다. 그리고 이같은 가치에 걸맞는 공적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캐릭터·애니메이션 영상물 제작업체 ㈜퍼니플럭스 이용호 부사장은 “제작사가 애니메이션 한편을 만들려면 진흥기관 지원금, 창투사 투자, 방송자 투자를 통해 제작비를 유치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을’의 입장일 수 밖에 없다”며 “제작지원금을 받는 것도 어렵지만 받아도 보증보험을 가입해야 하는 등 절차도 까다롭다. 지원금 운용에 대한 행정절차도 경직돼있다. 예산도 해마다 바뀐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부사장 역시 별도 기금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보스톤창업투자 정무열 대표이사 또한 “부족한 제작비는 완성보증을 통해 보완하고 있지만 완성보증의 경우 확실한 매출처가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고, 선회수를 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제작사나 투자자에게 부담이 된다. 따라서 이행보증보험이나 완성보증보험의 문턱을 낮추고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지난달 31일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애니메이션 산업진흥에 관한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 수립·시행 ▲애니메이션 발전기금 설치 ▲애니메이션 제작·판매·유통 등 종사자의 지식재산권 일방적인 양도요구·불공정한 계약·부당이득의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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