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하지 않고 적용되는 무차별적 규제방식이 대기업에 비해 ‘규제적응여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혁신역량을 떨어뜨린다는 의견이 나왔다. 규제방식이 획일적이어서 중소기업의 규제비용 부담만 커진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연구원 최수정 규제영향평가센터장은 19일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중소기업학회가 개최한 ‘일자리 창출·신산업 육성을 위한 중기 규제개혁 방안’ 포럼에서 “변화가 쉽고 빠른 중소기업이 4차 산업혁명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음에도, 국내 규제방식은 대·중소기업 구분없이 획일적인 탓에 중소기업의 규제비용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015년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규제개혁성과에 대한 중소기업의 평균 체감도는 77.8점이다. 84.9점을 기록한 대기업에 비해 7점이상 차이나는 수치로, 성취도평가로 환산하면 ‘미’ 수준이다. 정부가 규제개혁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에도, 중소기업 현장의 체감도가 여전히 낮다는 것이다. 이처럼 체감도가 낮은 것은 규제순응과 이행에 대한 적응여력이 대기업에 비해 미약함에도 획일적인 규제가 적용돼 나타난 결과다.

또 2013년 중소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같은해 6월기준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규제는 모두 1만4177건이고, 이중 중소기업 관련 규제가 8291건이다. 문제는 중소기업 관련 규제 가운데 기업규모에 따라 규제가 차등적용된 건수는 137건(1.7%)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등록된 규제 99% 가까이가 대·중소기업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됨으로써 규제적응여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내의 포지티브 규제방식이 중소기업의 혁신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규제방식은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방식으로 구분하는데, 포지티브 방식은 정책·법률상으로 허용하는 것을 정하고 그 이외의 것은 제한하는 규제방식이다. 네거티브 방식은 금지대상만을 정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허용하는 규제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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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따라 규제적용 대상을 대·중소기업으로 각각 구분하고, 규제방식 또한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전환해야 한다는게 최 센터장의 주장이다. 규제대상을 구분하고, 규제방식을 전환하기 위해 최 센터장은 먼저 규제영향에 대한 분석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2009년부터 ‘중소기업 규제영향력 평가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시행기관인 이 제도는 규제도입으로 중소기업 경영이 위축되지 않도록 관련 전문가들이 규제비용, 편익, 파급효과, 적합성 등을 고려해 최선의 규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도입했다.

규제가 가진 본래의 의도를 살리면서도, 규제에 따른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였음에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최 센터장에 따르면, 중소기업청이 최근 3년간 중소기업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규제를 적시해 ‘규제영향력 평가’가 필요하다고 국무조정실에 의견을 제출했음에도 평가 자체가 진행되지 않은 것이 상당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이 대표적이다. 전안법은 기존에 유아·아동복이나 전기공산품에만 국한돼 있던 KC 인증대상을 의류·잡화 등 신체에 직접 접촉하는 대부분의 용품으로 확대해 소상공인의 원성을 샀다. 만약 사전에 영향분석을 실시했더라면 소상공인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최 센터장의 말이다.

<그래픽=이가영 기자>   ©중기이코노미

미국의 경우에는 연방법률인 ‘규제유연성법(RFA)’을 통해 모든 연방정부기관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거나 기존 규제를 강화하려면 2회에 걸쳐 중소기업에 대한 영향분석을 실시하고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만약 이를 시행하지 않는 경우 기업이 소송을 통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기업이 승소하는 경우 관련 법률비용을 보전해 주는 조항도 있다. 한국도 규제를 신설·강화한 행정기관이 중소기업 영향분석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경우, 이에 대한 구제와 함께 제제를 할 수 있는 정책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최 센터장의 주장이다.

아울러 규제도입 초기에 중소기업 등 주요 이해관계자가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중소기업은 자금과 인력이 풍부한 대기업과 달리 규제가 신설·강화되기 전에 해당 규제의 영향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고, 생겨난 규제를 개선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따라서 규제를 신설·강화하는 중앙행정기관의 자체 규제심사위원회에 중소기업 전문가를 참여시켜 중소기업의 경제활동을 제약할 수 있는 불합리한 규제를 자체 규제심사 단계부터 차단한 필요가 있다.

이밖에 ▲규제차등화 마련 원칙을 법률로 격상 ▲중소기업의 규제 이행력 제고를 위한 규제이행체계 마련 ▲신사업 추진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특례제도·규제샌드박스제도 ▲지역 중소기업 맞춤형 규제개혁 등의 방식도 제안했다.

최 센터장은 “국내 전체 사업체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위한 규제개혁은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로 직결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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