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가 끊이지 않는 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범죄예방 효과가 떨어지는 현행법도 원인이다. 26일 국회에서 열린 ‘대기업의 하도급 갑질, 기술탈취로 인한 중소기업 피해사례’ 발표대회에 참석한 중소기업인들은 “대기업으로부터 기술탈취 피해를 입어도 손쓸 방도가 없고, 중소기업은 당하는 수밖에 없다”며 답답해했다.

현행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술탈취를 당한 중소기업은 기술탈취를 당했음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탈취당한 기술자료 대부분을 대기업이 갖고 있기 때문에 입증 자체가 사실상 불가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공정위에 신고해도 강제조사권이 없어, 대기업이 증거제출에 응하지 않으면 입증할 방법이 없다. 분쟁·중재를 신청해도 대기업이 승복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실제 ㈜비제이씨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분쟁조정신청사건에서 지난해 8월 중소기업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는 기술침해가 인정된다며 현대차에 대해 3억원의 손해배상과 함께 더 이상의 기술침해를 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현대차는 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했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져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지난 20일 ‘중소·벤처기업 혁신성장을 위한 지식재산 보호 강화방안’을 확정하고, 하도급관계가 아닌 경우에도 중소·벤처기업의 특허나 영업비밀을 침해하면,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액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기술탈취가 일어난 후의 대책이다. 기술탈취 사실이 밝혀지고 그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받을 시점에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몇이나 될까? 또 기술발전이 광속도로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가치 하락률 또한 광속도다. 최대 3배로 제한된 손해배상금이 중소기업의 피해를 100% 보상해줄지, 이미 망한 중소기업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기술탈취 여부를 다투는 재판절차에서 당장 필요한 대책은 입증책임의 전환이다. 피해기업이 기술탈취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기업이 기술탈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도록 바꾸는 것이다. 입증책임 전환도 중소기업이 지금보다는 소송을 쉽게 진행할 수 있지만, 예방적 대책이라고 보기 힘들다. 사후적 대책이 아니라 사전적 대책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3배가 아닌 수십배, 수백배의 손해배상을 통해서라도 기술탈취를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법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현행법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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