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 이론은 군사용어다. 상대방에게 핵전쟁도 불사할 수 있는 위험한 인물로 인식시켜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이다. 미국 인터넷매체 액시오스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FTA 개정 논의를 앞두고 미 대표부에게 미치광이 이론의 적용을 지시했다.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으면 한미FTA도 일방적으로 폐기할 수 있다는 으름장을 동원한 셈이다. 협상이 아니라 우월한 국제지위를 이용한 경제침략 행위와 다름없다.

한미FTA는 협상 초기부터 불평등·불공정 문제가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농업을 위시해 서비스산업 등 취약산업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이유로 국내 여론의 반발도 거셌다. 그러나 양국간 불평등·불공정은 철저히 은폐됐고, ‘협정 비준이 국익’이란 ‘만들어진’ 여론에 밀려 반대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한 한미FTA 협상은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2년 3월15일 발효돼 이제 5년을 넘기고 있다. 한미FTA 협상 초기 2007년 4월, 정부는 FTA 협상이 타결되면 향후 10년동안 GDP가 6% 늘어난다 했지만 확인된 바 없다. 또 새로운 일자리 35만개를 공언했지만 검증되지도 않았다.

혹자는 대미흑자를 내세워 한미FTA가 잘된 협정이며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한다. 미국의 개정요구 또한 미국의 입장에서 불평등·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가 한국에 불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숨겨졌을 뿐이지, 미국에 불평등·불공정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일례로 지난 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정보공개청구로 밝혀진 사실 중에는 한미FTA 체결 이후에도 한국기업은 미국 국내법을 적용받는 반면, 한국 진출 미국기업은 한국 국내법을 넘어서는 추가 혜택을 규정하고 있다. 또 지난 몇 년간의 대미흑자는 한국경기 둔화에 따른 수입감소 요인이 가장 크다. 2011년 이후 한국의 경기침체, 미국의 경기회복세가 한국의 수입감소, 미국의 소비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대미흑자를 빌미로 FTA 개정을 요구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나, FTA가 흑자를 늘렸으니 잘된 협상이라고 강변하는 국내 정치인들, 양자 모두 무지한 것이 아니라면 아전인수식 생떼쓰기는 어금버금하다. 그나마 대미수출에 따른 과실 역시 대기업·수출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FTA가 국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미치광이 전략 때문인가? 한미FTA ‘재협상은 없다’던 정부가 입장을 바꿔 미국과의 FTA 개정 협상방침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야권에서는 FTA 비준 당시 ‘굴욕협상’이라 비난했던 주장에 대해 사과할 것을 정부와 여당에 요구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거들고 나서 ‘국민을 속였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국익이란 이름으로 포장됐던 당시 한미FTA 협정은 불평등했고 충분히 굴욕협상이라고 비난받을 만 했다. 하지만 우월적 지위와 한반도 안보위기를 빌미로 ‘미치광이’처럼 밀어 붙이는 횡포를 두고, 우리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주장은 정치공세 수준에 불과하다. 여야 모두 정쟁을 중단하고 이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지점은 미국의 일방적인 횡포에 맞서 어떻게 주권을 지켜내고 국익에 부합되도록 개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자동차와 철강 산업을 지키기 위해 농산물을 개방하고, ‘차 한 대 팔면 얼만데 그까짓 쌀이 대수냐’는 식의 억지는 한번으로 족하다. 대기업·수출기업을 위해 국민 모두에게 부담을 지웠던 한미FTA 협상은 바로 잡아야 한다. 굴욕적이라서 감춰진 기존의 협상 내용은 밝혀져야 하고, 이제라도 동등한 지위로 개편돼야 한다. 초강대국의 미치광이 억지, 마냥 피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참에 불평등·불공정한 한미 FTA 협정, 제대로 한번 바꿔 보겠다는 각오와 지혜가 필요하다.

한미FTA 폐기! 트럼프만 할 수 있는 소리는 아니다. 우리라고 불평등하고 굴욕적인 협상을 감내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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