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9일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 및 부당지원 행위를 집중 감시하고, 총수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를 차단하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근절을 위해서는 엄정한 법집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위법행위가 확인되면 엄중 제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감몰아주기는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공헌한 종업원과 주주를 포함 이해관계자들에게 분배돼야 할 몫을 (재벌)총수라는 지위를 남용해 가로채는 도둑질이다. 또 입만 열면 ‘좌파들이 자유시장질서의 근간을 흔든다’고 주장했던 당사자가, 경쟁기업에 돌아가야 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반시장행위를 서슴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중 하나가 재벌개혁인데 그 시작은 (재벌)총수가 가진 권리만큼만 권한을 행사하도록, ‘비정상’을 바로잡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집중적인 감시와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재벌)총수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를 차단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표명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아울러 재벌개혁에 대한 기득권세력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려면, 공정거래위원장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국민적인 지지와 성원은 필수요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재벌개혁을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관련법률을 정비하는 것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산총액 5조원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사로서, 상장회사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율이 30%이상(비장장회사 20%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된다. 이처럼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작동하고 있음에도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논란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규제요건 자체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지난 9월 발표한 ‘2017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 공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5월1일 지정된 자산총액 10조원이상 27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1021개 계열사의 내부거래 금액은 총 152조5000억원이고, 내부거래 비중은 12.2% 수준이다.

자산 10조원 이상인 27개 대기업집단 1021개 계열사 내부에서 오간 돈만 152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것인데, 일몰아주기 규제대상 기업은 27개 대기업집단 80개 계열사에 불과하고, 내부거래액 규모도 7조5000억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결국 자산 10조원이상 27개 대기업집단 941개 계열사에서 오고간, 145조원에 대해서는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구멍이 뚫리면서 총수일가와 총수2세의 재산 부풀리기,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 및 승계가 멈추지 않고 있다. 공정위의 같은 자료에 따르면 10조원이상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계열사 지분율이 20%이상, 30%이상, 50%이상, 100%인 구간에서 내부거래 비중은 각각 9.4%, 14.0%, 14.7%, 17.3%로 증가했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을수록 일감몰아주기 비중 역시 비례해서 증가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총수2세의 계열사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중간의 비례관계는 더욱 뚜렸했다. 총수2세 지분율이 20%이상, 30%이상, 50%이상, 100%인 구간에서 내부거래 비중은 각각 11.4%, 15.4%, 18.4%, 66.0%로 나타났다. 총수2세 지분율이 높을수록 거래비중이 특히 높다는 것은,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재산과 경영권을 세습하는 ‘관행’이 정착됐음을 시사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통해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를 근절하고,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규제대상 기업을 확대하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은 지난해 7월 지분율 요건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기업의 총수일가 지분율 요건이 너무 높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개정안에 따라 지분율 요건을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없이 20%로 낮출 경우 규제대상 기업수가 현재 80개에서 680여개로 대폭 늘어난다. 또 삼성, 현대 등 상위 5대 기업집단의 경우 현재 규제대상이 17개 기업에 불과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107개로 확대된다는 것이 제 의원이 주장이다. 이외에도 개정안은 지분율 산정시 간접지분도 포함해 규제대상을 더욱 확대했다. 이는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집단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이 지주회사 이외 계열사 직접지분이 없어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할 수 없다는 한계를 보완한 것이다.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를 강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재벌개혁을 추진할 공정행정 최고책임자의 의지도 확인됐다. 남은 문제는 재벌개혁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인 대안마련, 입법절차 뿐이다. 지난 5월 촛불대선에서 극우정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재벌개혁’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적페청산을 둘러싼 여야간 갈등국면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럴수록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치력을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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