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청 종속구조…中企에 금융지원 ‘효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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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청 종속구조…中企에 금융지원 ‘효과없다’ 中企지분 참여·관계형금융 강화로 금융기관이 종속성 완화해야

기사입력2017-10-26 12:37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중소·벤처기업은 ‘99·88’로 대변되듯, 과거에서부터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한국경제 주춧돌이었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인 ‘소득주도 성장’의 주축이다. 그럼에도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과의 하도급 관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로 인해 성장사다리를 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원하청 종속구조, 中企·금융기관 종속성 완화시켜야

2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와 과제’ 세미나 ©중기이코노미

동국대 강경훈 교수(경영학과)는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25일 열린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와 과제’ 세미나에서 “중소·벤처기업 지원정책에 있어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간의 관계 등 중소·벤처기업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한다”며 “정부개입에 따른 해결은 한계는 있지만, 제도적·산업적으로 중소기업과 금융기관과의 관계를 보다 긴밀히 하면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간의 구조적 문제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소·벤처기업은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단가후려치기, 기술·인력탈취와 같은 부당한 대우나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한 내부거래나 문어발식 사업영역 확대 등 대기업의 탈법적 행위로 인해 성장의 어려움을 겪는다. 탈법적 행위는 법에 따라 처벌하고, 그에 따라 중소·벤처기업이 피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을 받을 가능성이라도 있다. 그러나 힘의 불균형에 따른 구조적 문제는 위법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탈법적 행위보다 해결하기 어렵다.

강 교수는 ‘힘의 불균형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와 그에 따라 중소·벤처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전용투자’ 개념을 예로 설명했다. 중소·벤처기업에 전용투자란 거래의존도가 높은 대기업이 요구하는 제품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말한다. 전용투자가 확대되면 단기적으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거래선을 다변화하지 못해 거래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특정 거래기업과의 매출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은 수급기업이라면 전용투자의 필요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中企가 대신 투자함으로써 대기업의 투자유인 감소

올해 1월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수급 중소기업의 거래기업 의존도는 83.7%다. 또 대기업만 거래하는 중소기업 비중은 14.8%, 대·중소기업과 동시에 거래하는 기업 비중은 29.1%로, 전체 중소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대기업의 영향력 아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급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거래량을 확대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공장부지 및 기계설비 확충 등 투자를 확대하려고 한다. 반면 대기업에는 자신이 해야 할 투자를 하도급기업이 대신함으로써 과소투자 유인이 발생한다. 이때 대기업이 ‘갑’의 지위를 악용하면 협상력 자체가 취약한 중소·벤처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강 교수는 “대기업이 부품 생산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저임금을 활용하거나, 경기변동에 따른 예측이 어려워 생산 가동률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완충장치로 하도급 거래를 선택하는 ‘이중구조론’은 부품업체에 부당한 거래를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이라며 “이중구조론에 대한 반론으로 서로 리스크를 나눈다는 ‘위험분담이론’도 있지만, 적어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중소기업이 상당히 있을 수 있다고는 충분히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왜곡된 산업생태계…정책지원 효과가 대기업으로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에 종속된 산업생태계는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정책금융이나 지원정책을 무력화하는 문제도 있다. 강 교수는 “중소기업에 정부가 정책금융을 지원하면, 이 효과가 대기업에 빨려 올라가는 ‘빨대효과’가 발생한다”며 “하도급기업은 시장에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보다 연구개발 투자량이 적고, 투자대비 기대되는 이익도 낮다. 하도급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부진은 투자여력 부족보다는 계약에 대한 낮은 신뢰도로 인한 투자유인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소송을 통해 해결하기도 어렵고,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어서 정부 역시 개입하기 어렵다. 중소·벤처기업 입장에선 기술탈취를 당하거나 단가 후려치기에 불만이 있는 경우에도 대기업과 거래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경우는 빈번하다. 또 대기업과 붙어봐야 중소·벤처기업이 어떤 피해를, 어떤 과정을 거쳐 입었는지 등 입증 자체가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고려도 작용한다.

<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금융기관이 지분보유나 관계형금융 강화해야

강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기업들이 중소·벤처기업과 자금대차 관계에 더해 지분보유나 관계형금융 활성화를 통해 중소·벤처기업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가져가야한다”며 “금융기업도 대기업인데 중소기업과 붙이면 착취가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과 금융기업간에는 전용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며, 기술탈취, 단가 후려치기의 문제도 동산업내 대기업과의 거래관계보다 발생하기 매우 어렵다. 또 거래 중소기업의 M&A나 새로운 대기업과의 하청관계 주선 등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과 금융기업간의 관계가 가까워짐에 따라 은산분리 원칙 훼손, 금융 리스크 증대 등의 문제도 존재한다. 강 교수는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몇가지 정책방안을 제시했다. 각각의 방안들은 장점이 존재하지만, 한계도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는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먼저 금융그룹의 은행, 사모투자전문회사, 금융투자사들이 하나의 중소기업과 관계를 중층적으로 맺어,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를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현재 은행, 사모투자전문회사, 금융투자사 등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금융그룹이 다수”라며 “현행 금융법규의 원칙과 체계를 거의 손상하지 않아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하다. 다만 현재 국내 금융그룹내 계열사간 인적교류나 정보공유가 원활하지 않아 기대만큼 효율성을 보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금융투자사나 은행이 중소·벤처기업 지분보유를 늘리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규모면에서 지원효과가 충분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다만 금융투자사는 대기업 관련업무를 주 수익원으로 하고, 그동안 산업자본의 금융투자업에 대한 진출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중소·벤처기업 지분보유에 대한 유인이 크지 않을 가능성은 있다. 또 은산분리 원칙 훼손과 금융안전성 저하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협동조합형금융, 지방은행, 정책금융 활용

대형 금융그룹과 연계가 힘들다면, 독일과 비슷하게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이나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지분보유를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 강 교수는 “이 방안은 소규모 금융기관이 관계형금융에 적합하다는 금융이론과도 상통한다”며 “다만 한국의 협동조합형 금융기관이나 지방은행이 규모나 능력면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으며, 산업자본의 지배가 많이 이뤄진 저축은행은 오히려 역효과의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 교수는 “민간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중소·벤처기업 금융을 늘리지 않을 경우, 기업은행이나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며 “현재 정책금융기관이 수행하고 있는 대출업무에 더해 투자나 증권설계 등의 업무 등, 은행업무와 증권업무를 겸업하는 ‘유니버셜 뱅크’로서의 업무를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금융사의 中企 지분보유는 글로벌 트렌드와 어긋나”

강 교수의 제안에 대해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은행은 기본적으로 안정성이 중요하고, 해외에서도 지분보유를 은행업무와 점점 분리해 가는데, 중소·벤처기업의 지분보유 방안은 글로벌 트렌드와 어긋나는 것 아닌가 싶다”며 “증권사는 고객을 위해서 수익을 내며 일하는 곳인데, 증권사가 장기적으로 중소·벤처기업 지분을 보유하는건 고객과의 이해상충 문제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골드만삭스 등이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갔지만, 현재 쇠퇴 중이라 실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신 실장은 “정책금융기관의 경우 현재 대출업무에만 집중해도 손실이 발생하는데, 지분까지 가져갈 경우 어떤 손실이 발생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금융그룹 계열사의 중층적 접근으로, 그 중에서도 사모펀드 투자회사 등이 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분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다만 대형 금융그룹들은 고정비가 높아 중소벤처기업 지분을 살 인센티브가 낮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