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하고 참담함을 넘어 분노가 치솟는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화물과적, 선박개조, 승무원의 무책임과 역할 부재, 재난대처 미숙과 안전사고 대비훈련 전무…. 무엇보다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 부재와 무능을 보면서 세월호는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배를 버리고 먼저 도망간 선장은 대한민국 정부이고, 움직이지 말고 객실에 앉아 있으라는 선내 방송은 희생자와 유가족, 실종자를 우선시 하지 못한 언론의 보도행태와 똑같다는 지적에 반박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또 구조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장된 아이를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현실은 우리의 미래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무엇보다 경제활성화 운운하며 묶어 둔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정책은 세월호에 실린 화물들을 단단하게 결박하지 않고 느슨하게 풀어 둔 고정장치와 다를 바 없다.

세월호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야 할 괴물이었다. MB정부때 20~25년으로 여객선 나이(선령)를 묶어놨던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노후화된 세월호는 무사히(?) 운항을 할 수 있게 된다. 운항 연수가 늘어나자 청해진해운은 노후화된 고물배를 수입해 탐욕스런 이윤창출에 나선다. 승객을 더 태우기 위해 그리고 화물을 더 싣기 위해 고물배를 개조했다. 이를 통해 수입이 늘었음에도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비정규직 등을 채용하면서 경비절감에도 성공한다. 연안여객선의 연령 연장 위험성을 경고한 연구용역을 무시한 채 선령을 연장하게 됨으로써 가능해진 일들이다.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공개한 ‘연안여객선 선령제한제도 개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선령제한 연장 시 해양안전의 약화가 우려된다는 선박검사기관 전문가의 조언이 담겨있다. 선령제한은 1963년부터 약 45년간 운영해 온 제도로 연안여객선의 안전을 증진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보고서는 선령 25년을 넘은 선박에서 여객사고를 동반하는 해양사고가 발생한다면, 이 제도를 완화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이익인 연간 약 250억원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손실과 더불어 사회적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도 제기했다.

하지만 2009년 국토해양부는 해운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선령제한을 완화해 30년까지 운항이 가능토록 변경했다. 이로써 2008년말 기준 연안여객선 166척 가운데 20년 이상인 선박은 12척에 불과했지만 5년만에 55척이나 늘어났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중 세월호는 일본이 18년간 사용하다가 퇴역시킨 여객선이다. 일본처럼 선령에 엄격했던 우리나라는 탐욕스런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 규제완화앞에 한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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