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는 ‘갑’이 저질러놓고, 그에 따른 뒤처리를 ‘을’에게 전가한 꼴이다. 또 엉겁결에 짐을 떠안은 ‘을’은 지금껏 ‘갑’에게 당했던 설움에 대한 학습효과인지, 그 부담을 자신보다 약자인 ‘병’에게 떠넘겼다. 여기서 ‘갑’은 파리바게뜨 본사, ‘을’은 파리바게뜨 가맹점 그리고 ‘병’은 가맹점에서 일하는 제빵·카페기사다.

가맹본사의 온갖 ‘갑질’에 대한 가맹점주의 저항과 시민사회의 분노가 하나로 모아져 ‘갑질근절’은 우리 공동체의 키워드가 됐다. 새 정부 출범 직후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된 당시 김상조 내정자가 ‘을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약속했을 때, 가맹점주들이 환영하고 기대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공정위원장의 약속은 여전히 실천 중이다. 시장에서 가맹점주는 아직까지 가맹본사와 대등한 지위를 점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 정부와 달리 가맹점주의 영업조건 및 환경이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싸우면서 닮아가고 괴물이 돼서는 안된다. 파리바게뜨 본사의 ‘갑질’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가맹점주가 본사의 ‘갑질’을 답습해서는 안된다. 또 본사의 불공정행위에 가맹점주 스스로 조직해 싸웠다면, 제빵·카페기사 역시 가맹점주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 저항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파리바게뜨 가맹점주가 제빵·카페기사의 천부적 권리인 저항권을 부정하고 있어, 이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 제빵·카페기사 불법파견 사실이 드러났고,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 본사에 대해 이들 제빵·카페기사를 직접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파견법을 위반한 본사가 파견법이 정한대로 제빵·카페기사를 고용하면, 법위반 상태는 해소된다. 이후 본사는 계속해서 양질의 빵 재료를 공급하고, 제빵기사는 가맹점에서 좋은 빵을 만들고, 가맹점주는 열심히 팔면 될 일이었다.

직접고용에 따른 파리바게뜨 본사의 부담이 가맹점주에게 부당하게 전가되면, 이는 자신이 싸워서 해결하거나 조정·협의할 문제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은 회피하고, 비겁하게 제빵·카페기사의 노동조건을 저하시켜서는 안된다.   ©중기이코노미

사단은 파리바게뜨 본사가 직접고용의무를 피할 ‘꼼수’를 부리면서 벌어졌다. 파리바게뜨 본사는 가맹점주와 불법파견 통로로 사용했던 11개 협력업체 등 3자가 투자한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그곳를 통해 제빵·카페기사를 고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가맹점주도 동조했다. 그리고 ‘협력업체’란 이름으로 애초부터 실체가 불분명했던 ‘무허가파견업체’도 한 자리 꿰차고 앉았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본사가 최근 가맹점주 등을 대상으로 진행중인 ‘상생기업 설명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설명회에서 이들 3자는 합작회사의 평균연봉이 지금보다 13% 높다는 등의 방안을 제시하며, 제빵·카페기사 설득에 나서고 있다.

합작회사 방안이 시행되면 파리바게뜨 본사는 제빵·카페기사를 직접고용함으로써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인건비, 직접고용에 따른 노무관리 문제 등의 부담을 털어낼 수 있다. 그리고 가맹점주협의회 관계자도 주간지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제빵기사를 본사가 직접고용하면 인건비가 늘어날 텐데, 그 부담도 결국 가맹점주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합작회사 방안을 지지하는 이유를 밝혔다.

합작회사 추진과정에서 확인된 파리바게뜨 본사의 탐욕은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그동안 본사 ‘갑질’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던 가맹점주라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시정명령 이행 의무자는 본사이고, 고용의무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자는 제빵·카페기사다. 또 제빵·카페기사의 임금 및 근로조건을 당사자와 어떤 협의도 없이 가맹점주가 결정하겠다는 것은 월권이고, 제빵·카페기사 노동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고용의무 이행여부를 둘러싼 본사와 제빵·카페기사간의 협상에 가맹점주가 참여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

더욱이 가맹점주가 파리바게뜨 본사와 제빵·카페기사간 협상에 끼어들고자 하는 이유가 자신의 몫을 키우기 위해 제빵·카페기사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 제빵·카페기사를 본사가 직접고용하면, 그 부담이 가맹점주에게 전가된다는 ‘우려’는 합작회사를 세울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도 되지 못한다.

직접고용에 따른 파리바게뜨 본사의 부담이 가맹점주에게 부당하게 전가되면, 이는 자신이 싸워서 해결하거나 조정·협의할 문제다. 싸움이든 협상이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은 회피하고, 비겁하게 제빵·카페기사의 노동조건을 저하시켜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부담’을 이유로 한 제빵·카페기사에 대한 갑질은, 지금껏 가맹점주의 정당한 주장을 지지했던 시민사회에 대한 배신이다.

안타깝다. 여전히 갑을관계가 지배적인 가맹사업시장에서, 가맹점주가 생존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연대’다. 치킨이든 피자든, 커피 또는 편의점 가맹점주가 상호 경쟁도 하지만,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이유는 ‘을’이란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갑’의 과도한 탐욕을 묵인할 경우 ‘을’의 생존차원을 넘어 우리 공동체가 ‘정글화’될 것이란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그럼에도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시정명령 이행과정에서 가맹점주(을)는 가맹사업관계에서 보다 약자인 ‘병’에게 갑질을 함으로써 연대의 정신을 훼손했다. ‘을’에 대한 ‘갑’의 갑질과 ‘병’에 대한 ‘을’의 갑질은 본질적으로 같다.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가지말기를 진심으로 당부한다. 가맹점주는 이제 멈춰서 제빵·카페기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맹점주 자신이 우리 공동체에 빚진 만큼만 그들에게 나눠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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