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언론 뉴스타파는 ‘조세회피처(tax haven)’에 한국인이 설립한 법인은 90개이고, 법인설립 서류 등에 한국주소를 기재한 한국인은 197명이라고 6일 보도했다. 몰타, 버뮤다, 케이맨제도, 세이셸 등의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대기업과 공기업은 현대상사, 효성그룹, 가스공사 등이며 그리고 코스닥 상장 중견기업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조세회피처는 법인세를 아예 부과하지 않거나 세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수출입금액을 조작하고 차액을 은닉하기에 용이하다. 또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세탁한 자금을 국내로 반입하거나, 애초부터 비자금 세탁소 용도로 조세회피처를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대다수 언론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 등 각국 거물급 인사들이 조세회피처를 이용했다며 국제적인 파장이 예상된다고 썼다. 국제문제에 대한 염려와는 별개로 한국내 파장을 예고하는 보다 심층적인 기사가 아직 나오지 않는 부분은 다소 의외다.

보도를 접하고 가장 궁금했던 대목은 실명이 확인된 기업 이외 나머지 기업의 이름과 법인설립 관련 서류 등에 등재된 한국인 명단이다. 무엇보다 이들 기업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본래 목적이 궁금했다. 또 90곳 기업과 197명 한국인이 조세피난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고 싶었고, 아마 대다수 국민 역시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이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기획재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국세청·한국은행·한국수출입은행의 ‘해외 투자 현황’ 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8부터 2016년까지 국내 대기업들이 조세회피처 국가에 594조858억원을 송금했다. 반면 국내로 다시 반입된 수취액은 428조4518억원으로 송금액보다 165조6340억원 적었다. 27% 이상이 페이퍼컴퍼니에 쌓여 있거나, 다른 통로로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기업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본래 목적이 궁금하다. 대다수 국민은 조세피난처에서 이들 기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고 싶어 하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실제 조세회피지역의 페이퍼컴퍼니 등을 이용한 역외탈세 규모는 커지고 건수 또한 급증했다. 박 의원이 공개한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506억원(30건)이던 국세청의 역외탈세 징수세액은 2013년 1조원(211건)을 넘어섰고, 이후 1조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지난해 기준 역외탈세는 1조372억원(228건)으로 2008년과 비교하면 금액으론 760%, 건수론 660% 이상 폭증했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이 부과되는 법, 결국 국세청이 나서야 한다. 165조6340억원 전부에 대해 탈세 ‘추정’을 전제로 해당 기업에 소명할 할 것을 요구하고, 소명하지 못한 기업에 대해서는 세법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조세정의 차원에서도 마땅하다.

역외탈세 방식이 다양화되고 신종수법이 계속 나타남에 따라 역외탈세 조사를 위한 인력확보 및 시스템 마련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 역시 어제오늘 나온 말이 아니다. 역외탈세 적발시 국세기본법상 가산제 부담을 높이는 방안도 있었다. 부정행위로 미신고하거나 과소신고한 경우 40% 가산세를 부담하고 있는데, 이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자는 방안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조사한 해외사례에 따르면 이탈리아, 뉴질랜드, 스페인, 스위스, 영국, 벨기에는 최고 100%이상, 프랑스 최고 80%, 미국과 헝가리가 최고 75%의 가산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외 역외탈세 관련정보가 주로 해외에 있고, 탈세 관련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내부자 신고를 유도할 인센티브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현행 신고포상금 지급률 및 한도액(최고 30억원)을 높이자는 방안이다.

제도개선을 통한 역외탈세 방지대책은 중기적인 과제로 가져가더라도, 뉴스타파를 통해 드러난 90개 기업과 197명에 대한 정밀검증은 국세청이 해야 할 당장의 과제다. 세무행정의 존재목적인 ‘숨겨진’ 세원발굴을 자본도 영세한 인터넷언론사가 대신해 줬다는 점에서 국세청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현행 세무행정에 대해 ‘조세정의’ 실현 요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국세청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반영한 것이다. 또 뉴스타파 보도는 그간 국세청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었던 사례의 일단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라도 국세청은 지금 당장 90개 기업과 197명 각각이 행한 행위를 조사해 국민에게 소상히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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