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협력업체간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전속거래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하도급법상 ‘부당한 전속거래 금지’ 관련규정을 신설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 제도연구실장은 중소기업중앙회와 산업연구원이 7일 주최한 ‘부당한 전속거래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정책토론회에서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이 이어져오며 고착화된 전속거래 구조로 중소협력업체는 해외진출과 혁신에 취약하며, 특정 대기업에 대한 거래편중도가 높아 거래중단에 의한 피해도 크다”며 “하도급법상 부당한 전속거래 금지 관련규정을 신설하는 등 부당한 전속거래를 근절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가절감 위해 도입, 수직적 분업관계…중소기업 체질 약화

전속거래는 1975년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이 제정되고, 부품중소기업과 수출대기업간 하도급거래가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1990년대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자 원가절감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협력업체간 수직적 분업관계가 확대·강화됐다. 그 결과 국내 중소제조업체의 대기업 의존도는 심화됐다.

과거에는 대기업의 수출증가가 중소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낙수효과가 작동했지만, 최근에는 대기업-중소기업간 ‘선 성장-후 분배’의 고리가 단절됐다. 국내 주요 산업에서 대기업의 성장이 협력업체의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데, 예를들어 현대자동차의 매출액이 1% 증가할 때 1차협력업체는 0.43%, 2차협력업체는 0.05%, 3차협력업체는 0.004% 각각 증가했을 뿐이다. 대기업과 협력업체간 수익성 격차가 뚜렷해지면서 중소협력업체의 혁신의지도 상실되고 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주요국 자동차산업 분야에서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을 비교해 보면, 부품업체 대부분의 영업이익률은 완성차업체의 영업이익률을 상회하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부품업체 영업이익률이 완성차업체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부당한 전속거래 폐해…전속거래 불공정행위 제재 필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거래를 요구하는 전속거래로 중소협력업체의 해외진출은 제한받는다. 또 해외진출 역량이 부족한 중소협력업체는 대기업의 수출부진, 생산기지 해외이전 등의 외부충격에도 취약하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국가중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은 우리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역량이 바닥 수준이라는 것을 설명해준다. 고착화된 수직·전속적 거래관계는 업종·규모 구분없이 수평적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4차 산업혁명의 특성과도 배치된다. 

거래편중도가 높은 상황에서 거래중단이 일어날 경우 수급사업자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가능성을 우려해 거래확대를 꺼리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거래규모가 큰 원사업자가 거래중단을 할 경우 일시에 동일한 생산량을 납품할 수 있는 거래처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래확대를 자제하는 비효율’은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양용현 실장은 “하도급 전속거래에서 경쟁제한행위 혹은 불공정행위가 자주 나타난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속거래를 제한’하거나 ‘불공정행위를 제재’하는 두가지 접근방식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속거래 제한=양 실장이 제안한 전속거래 제한은 전속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속거래를 많이 하는 원사업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수급사업자가 거래처를 다변화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전속거래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전속거래를 금지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은 원사업자나 수급사업자 모두의 자율을 과도하게 침해할 가능성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불공정행위 제재=불공정한 전속거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공정행위 제재를 기본으로 하되, 전속거래에 대해서는 계약자율권을 일부 제한하거나 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보완하자는 견해다.

수급사업자로 하여금 비용절감이나 기술개발에 대한 유인을 주기 위해 자체적으로 비용절감 및 기술개발에 성공할 경우 단가 인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또 거래중단 위협으로 인한 협상력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종속성이 과도한 전속거래에 대해서는 기존 계약의 일부를 유지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계약유지청구권을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 특히 원사업자의 요청으로 생산설비를 확장한 경우,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또한 의미있는 방안이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산업연구원이 7일 주최한 ‘부당한 전속거래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정책토론회에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대기업과 협력업체간 전속거래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하도급법상 부당한 전속거래 금지 관련 규정을 신설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기이코노미

하도급법상 부당한 전속거래 금지 관련규정을 신설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부당한 전속거래 계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도록 하도급법 제3조의4(부당한 특약의 금지) 또는 제18조(부당한 경영간섭의 금지)에 특정 사업자와의 거래를 강요하는 전속거래를 금지하도록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전속거래로 협상력을 상실한 협력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부당한 경영간섭 행위를 규정하는 관련지침을 마련하고, 장기계약이 일반적인 전속거래의 특성을 반영해 전속거래 관계에서 발생한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 및 처벌가능 기간을 기존 3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는 방법도 나왔다.

전속거래 탈피 원할 때 원수급자가 방해 못하도록 제도화

이밖에도 양 실장은 수급사업자가 전속거래로부터 탈피하고자 할 경우에는 원사업자가 이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할 것을 제안했다. 

수급사업자가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는 경우나 거래처를 다변화하려할 때, 이를 원사업자가 방해하는 행위는 원천적으로 금지하자는 것이다. 다만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사업 초기성장을 위해 지원을 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부품조달의 예측가능성 등을 고려해 전속거래로부터 탈피할 수 없는 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양 실장은 “갑자기 전속거래를 제한할 경우 국내 협력업체의 위기는 단기적으로 가중될 것”이라며 “특정기업에 대한 거래의존도가 높고 혁신역량이 부족한 협력업체일수록 피해는 불가피하므로 기존의 하도급 관계가 파트너 관계로, 수직적 거래가 수평적 거래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전속거래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협력업체에 대해 자생력 강화를 위한 종합지원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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