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부터 전속거래를 연구해왔다. 연구를 해놓고도 결과를 발표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사회적 파장이 워낙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부당한 전속거래에 대한 토론회에서 국책연구원 한 관계자가 한 발언이다. 그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전속거래만큼 효율이 높은 비즈니스모델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속거래 실태조사를 위한 연구원의 현장방문조차 막는 대기업이 많았다고 밝혔다. 현장방문을 허용한 경우에도 기자나 공무원이 동행하면 절대 안된다고 해, 심지어 위장을 하고 조사를 나가려고 한적도 있었다고 했다. 대기업이 쌓은 벽이 얼마나 공고한지 보여주는 단적이 예다.

연구원 관계자에 따르면, 전속거래를 하는 중소협력체는 혁신을 위한 동기를 가질 이유 자체가 없다. 투자를 해도 기술개발의 결과는 결국 대기업이 가져가는 구조에서 중소협력업체가 자발적으로 기술개발에 나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중소기업 대표는 현장에서 겪는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은 아무리 얘기해도 모른다고 울분을 토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녀도 중소기업에 돌아오는 것은 대기업이 주는 떡고물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지난 7일 열린 ‘부당한 전속거래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정책토론회.   ©중기이코노미

산업연구원이 3대 주력산업 전속거래업체를 대상으로 전속거래로 어려움을 겪은 사례를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꼽은 사례는 ‘납기일 단축요구(25%)’다. 이어 ‘무리한 품질수준 요구(16%)’, ‘납품대금 지급 지연(6%)’ 순이었지만, ‘기타’라고 응답한 비율이 40%에 달했다. 겉으로 드러난 것 이외에 알려지지 않은 부당한 사례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대기업이 전속거래업체에 행하는 불공정행위는 정책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국책연구원 관계자의 진단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는 관행을 넘어 제도화까지 됐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재벌기업 중심의 수직·종속적인 원하청구조가 바뀌지 않고서는, 중소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혁신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는 불가능하다. 대기업과 협력업체간 거래는 수직·종속이 아닌 대등·수평하게 바뀌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시장질서 내에서 대·중소기업간 ‘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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