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차기 회장 최종후보자로 윤종규 현 회장이 선정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셀프추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노동이사제’ 도입이 제시됐다.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셀프추천 논란은 대표이사 회장이 사실상 이사를 선임하고, 그렇게 선임된 이사가 다시 대표이사 회장을 선임함으로써 지배구조를 폐쇄적으로 만들고, 경영투명성 역시 저해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노동자가 추천한 이사에게 대표이사 회장 후보 추천권을 부여함으로써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득구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신한·하나·KB 등 국내 빅3 금융지주회사의 공통점은, 금융지주회사 지배를 위한 대표이사 회장의 장기집권과 연임을 두고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라며 “이들 회사을 보면 2인자들이 잘 없다. 클 만한 사람을 잘라 내버리고, 사람이 없어 1인자다. 또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금융지주회사에서 1인자 구도가 가능한 이유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사지배구조법)’ 영향이 크다. 금융사지배구조법 제16조·제17조에 따르면, 이사회내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사람 중에서 사외이사, 대표이사, 감사위원 등 임원을 선임해야 한다. 이사의 자격을 갖춰야만 대표이사 회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상법 제389조에 따라 대표이사 회장 선임은 이사회 결의로 할 수 있지만, 정관으로 정하면 주주총회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대표이사 회장 선임의 원칙은 이사회 결의이고, 주총은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국내 자산규모 상위 4개의 신한·농협·하나·KB금융지주 모두는 금융사지배구조법과 상법에 따라 주총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면서, 명시적으로 또는 사실상 이사회가 대표이사 회장을 결정한다.

이날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농협금융지주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KB금융지주는 ‘지배구조위원회’가 후보를 선임하면 주총에서 선임하도록 했다. 양자 모두 최종 결정은 주총의 몫으로 넘겼지만, 정관을 통해 ‘이사 중에서 대표이사 회장 1인을 선임’하도록 해, 이사회가 대표이사 회장을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다.

농협과 KB금융은 주총이란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도록 했지만,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는 ‘껍데기’마저도 걸치지 않았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배구조 및 회장후보 추천위원회’, 하나금융지주는 이사회 내 위원회인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대표이사 회장 후보자를 추천하고 이사회 결의를 통해 선임한다.

“회장의 연임제한이 없다…부당한 영향력 방관하는 것”

이들 4개 금융지주사의 대표이사 회장 선임절차의 공통점은 이사회의 폐쇄적인 후보군에 진입해야만 대표이사 회장이 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라는 점이다.

이사들의 임기도 문제다. 이들 4개 금융지주사는 대표이사를 비롯한 이사들의 임기를 정관에 3년(신한·하나·KB)과 2년(농협)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연임제한은 없다. 

김 상임대표는 “이사들의 연임여부는 대표이사 회장이 결정한다. 또 이사 후보선정이 대표이사 회장의 영향력 하에서 결정되고, 주총은 형식적인 과정이다. 결국 대표이사 회장이 이사를 결정하고, 이사들은 연임을 하고 싶거나, 다른 계열사에 이사로 가기 위해서는 대표이사 회장의 눈치를 봐야하니, 셀프인사 또는 회전문인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대표이사 회장의 연임제한이 없는 것은 연임을 위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방관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3년 단임 또는 1회에 한해 3년 연임을 허용, 아니면 3년 중임제든 무엇을 도입하든지 간에 무제한적 연임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제’ 도입해 대표이사 회장 후보 추천해야

지배구조개선 방안으로 전자·서면·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제기되는 이유는 이사회 또는 주총을 통해 선임된 이사들이 제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의구심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서면·집중투표제를 도입해도 소수주주들의 영향력은 다소 강화할 수 있지만. 의사결정을 좌우할만한 주식으로 모으기 전에는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9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사주가 없어도 노동자들이 대표이사 회장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베이스가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김 상임대표는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대표이사 회장 후보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그게 안된다면 우리사주조합 또는 5% 이상의 지분을 가진 주주, 금융지주회사의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후보를 추천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힐 수도 있다. 또 금융지주사의 후보추천위원회 참여자 범위 또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이기 때문에 대표이사 회장 추천할 수 있어야” 

이형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놨다. 이 과장은 “현제 제도상 허용돼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해관계를 반영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며 “KB금융지주처럼 우리사주조합이 있는 곳은 주주제안권을 통해 정당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장은 “정책당국으로서 어떤 방법을 활용할 것이냐가 고민이고, 정책당국이 가지고 있는 수단이란 것이 결국 법을 통해서다. 문제가 있다고 모두 법으로 규율하는게 맞느냐는 고민도 필요하다”며 “법을 만들고 운영하는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튼튼하지 않고, 세세한 내용을 법에 담아도 정치권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자율적 개선이 미진하니까 제도화를 추진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자율적 수단이다“고 했다.

그러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사주가 없어도 노동자들이 대표이사 회장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베이스가 반영돼야 한다”며 “우리사주가 없는 곳도 많다. 주주자격으로 추천한 것은 상법의 영역으로, 그런 것이 없더라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대표를 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