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의 한 보험대리점(GA) A사는 최근 조직단위로 움직이는 ‘먹튀(먹고 튀는)’ 보험설계사로 인해 수억원대의 피해를 입었다. 이 보험설계사들이 계약한 여러 건의 보험이 실효가 되면서, 보험업계 관행상 미리 지급했던 수수료와 관리지원비용, 대출금 등을 돌려받지 못해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2. 또 다른 보험대리점 B사 역시 올해 초 한 보험설계사가 고객명의를 도용해 보험계약을 하고 해지해 선지급 수수료 사기피해를 당했다. 익명을 원한 B사의 한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자리에서 “이런 사고로 한 건의 피해금액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를 때도 있다”며 “조직적이고 사전에 계획된 사기행각을 미리 알아채고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한다.

A사와 B사를 비롯 다수의 보험대리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명 ‘먹튀 보험설계사’에 의한 보험사기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회사는 계약당사자에게 기납입보험료를 환불해주고, 이후 보험대리점에 지급했던 보험판매수수료를 보험유지기간 비율에 따라 환수해 간다. 이 경우 보험대리점은 보험설계사에게 지급한 판매수수료를 회수해야 하는데, 먹튀 보험설계사 특성상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고스란히 손실을 떠안는 것이다.

“먹튀 보험설계사 피해…대리점이 모두 떠안는 것은 불합리”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2014년 7월 보험업법상 보험업종사자의 보험사기 행위에 대한 행정제재 근거 조항이 도입된 이후, 보험설계사의 관리책임은 보험회사의 모임체인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 등에서 맡고 있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회사·보험대리점 및 보험중개사 등의 소속 보험설계사가 되려는 자는 금융위원회에 등록해야 한다. 보험설계사의 등록과 관리 업무는 보험사 협회가 맡고 있다. 또 보험회사와 금융감독원은 보험설계사의 보험사기 등을 예방하기 위해 정해진 기간에 예방교육을 실시한다. 보험설계사에 의한 불법행위가 적발될 경우, 보험회사는 고발을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금융위원회는 보험설계사의 불법행위 경중에 따라 업무정지에서 등록취소 등의 행정제재를 취할 수 있다.

이밖에도 보험회사는 보험설계사가 보험내용과 보장내용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보험계약자의 서명·기명날인·녹취 등을 통해 확인하도록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금융위원회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이처럼 보험설계사 관리책임이 결국 보험회사에도 있는데도, 먹튀 보험설계사의 사기행위로 인한 피해는 직접적으로 보험대리점만 부담하는 구조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 대리점업무본부의 한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먹튀 보험설계사로 인한 피해 부담을 대리점이 모두 떠안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보험사 협회인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등에서 보험설계사 등록·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보험설계사에 의한 사고발생시 보험회사에도 보험설계사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원 우려해 대리점에 ‘품질보증해지’ 수용을 강요하는 보험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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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니다. 보험대리점 관계자들에 따르면, 보험대리점에 대한 보험회사의 ‘갑질’은 품질보증해지가 발생할 때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보험가입자는 보험가입 증권수령일로부터 15일, 청약일로부터 30일 이내라면 단순변심만으로도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청약철회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계약성립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품질보증해지를 신청할 수 있다. 품질보증해지는 계약체결 과정에서 ‘보험약관 교부·중요한 내용 설명·청약서 사본(부본) 수령·자필서명’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해당계약을 무효화하는 제도다.

품질보증해지시 보험회사가 보험설계사나 보험대리점에 수용 여부를 묻는데, 이 때 보험대리점이 수용하지 않으면, 후에 보험회사가 전화해 계약자의 금융당국 민원제기 등을 우려해 수용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품질보증해지 민원이 발생하면 보험회사는 보험대리점에 이를 수용해달라고 요청한다. 보험사 민원건수는 금감원 ‘소비자보호실태평가’ 항목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리점이 품질보증해지를 수용하지 않으면, 보험계약자 대부분은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고 보험회사와 법적분쟁을 벌인다. 이런 이유로 보험회사는 민원발생을 줄이기 위해 피해부담을 모두 대리점에 떠넘긴다는 얘기다.

보험대리점 한 관계자는 “대리점이 ‘정상계약이고 해피콜을 통해 본사도 최종확인을 했기 때문에 해지를 수용할 수 없다’고 의사를 밝히면, 보험회사에서 재차 전화해 수용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대리점 입장에서는 계속적인 거래를 이어가기 위해 보험회사의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에는 보험설계사와 계약자가 공모해 고의로 품질보증해지를 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금감원 한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금감원은 매년 64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금융소비자보호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민원건수를 평가하는 항목이 있다”며 “아직도 암묵적으로 잘못된 관행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험사의 형식적인 해피콜도 문제…“보험회사는 손해보는 일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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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회사의 형식적인 ‘해피콜’ 운영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보험계약자와 보험설계사 사이에 보험계약이 체결되면,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자에게 직접 전화를 해 보험상품 가입과 관련한 중요사항을 점검한다. ▲계약사항(보험료 등) ▲약관수령·자필서명·청약서 부본 수령 여부 ▲보험상품 주요 보장내용 등을 모두 이해했는지 여부, 보험설계사가 판매절차를 지켰는지를 확인하고 최종 계약 승인을 한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보험계약의 최종결정권을 가지고 고객과 직접 소통한 후, 계약결정을 한 보험회사에도 계약해지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보험대리점 한 관계자는 “보험사기 등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보험대리점이 떠안아야 하는 현실은 보험회사의 대표적인 갑질”이라며 “보험판매 과정에서 실효나 품질보증해지 등이 발생해도 보험회사는 손해보는 일이 없다. 하지만 중간에서 판매를 대행한 대리점은 피해가 크다”고 밝혔다. 또 “해피콜을 형식적으로 운영하지 말고, 완전판매의 수단이 되도록 재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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