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놓고 유력자 집안의 아들이 “국민이 미개하니 국가도 미개하다”는 발언을 할 때만 해도 철없는 나이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소년이 받았을 이 땅의 ‘좋은 교육’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지 않았던가? “경기도 안에서는 좀 영향력이 있는데 여기는 경기도가 아니어서…” 지하 다방에서 시간이나 축내는 시정잡배 식의 싸구려 유머를 던지고 시 짓기 놀이를 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언행이야 화려한 전력에 비하면 새롭지도 않았다. “(유력자 집안 아들의) 반듯하고 어른스런 발언까지 문제삼는 사람들은 ‘에프킬러’로 박멸해야 한다”는 지만원 씨 발언 역시 설익은 노이즈 마케팅이려니 넘겨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수백명의 순결한 목숨값을, 그로 인해 열려버린 지옥의 문 앞에서 흘리는 가족들의 피눈물을, ‘국민의식’ 고양을 위한 ‘수업료’로 간단히 치부해버린 새누리당 송영선 의원의 발언은 해도 너무했다. “내 말에 의해 상처를 받으신 분, 털끝만큼이라도 상처받으신 분이 ‘있다면’ 용서해 달라”는 사과는 설상가상이었다. “있다면” 이라니… 그런 발언을 내뱉은 ‘입’보다 국민의 생명을 ‘도구적’ 존재 이상으로는 보지 못하는 ‘머리와 가슴’이 더 문제라는 것을, 몰랐다면 미련한 것이고 알고도 무시했다면 비겁한 일이다.

뒤이어 따르는 언론의 ‘국민의식 개조’ 논리는 더 이상 봐주기 힘든 지경이다. 한 신문은 “(세월호 참사는) 이기주의와 사리사욕, 안전불감증, 공복의식 부재 등 우리 사회의 빗나간 윤리와 인재가 맞물린 재앙”이라며 “선진국이 어떻고” 식의 훈수를 뒀다. 또 다른 신문도 사고 원인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국민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발언을 관통하는 시각은 단 하나 ‘유체이탈’이다. 그들의 몸은 이 땅에 있으되 정신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발언이나 기사 속에서 언급되는 국민은 ‘나’를 제외한 타자, 관찰하고 비판하고 훈수를 해줘야 할 대상이다. 월드컵 축구경기나 선거판이 아니라면 그들은 좀체로 ‘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수없이 반복되는 일에도 “회사도, 정부도, 국민의식도 (나만 빼고) 모두 잘못됐으니 악수하고 끝내라”는 정도 외에는 할 말이 없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문제의 본질을 정조준하기는 싫으니, 강 건너 저편에서 양비론의 물타기 설법만 그저 열심이다.

본말이 전도됐다.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민의식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의연하게 방송지시를 따르고, 덜덜 떨리는 가슴으로도 구명조끼를 양보한 탑승객들, 피끓는 와중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예의를 지키는 가족들, 빗줄기 속에서도 분향소를 찾아 아픔을 나누는 시민들, 분향소까지 무료로 택시를 몰아주는 기사들, 실명 혹은 익명으로 기부릴레이를 펼치는 이웃들까지…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어떤 ‘선진국민’보다 성숙한 국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개조’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그들만 빼고 다 안다. 그러니 제발, 진부한 타령 그만 접으시고 ‘우리’ 안으로 먼저 들어오시라 권하고 싶다. 정 할 것 없다면 운동화 갈아신고 따뜻한 라면사발을 나르거나, 손 부여잡고 함께 울음이라도 울어주시라. 핏발 선 두 눈으로 절망의 끝자락을 함께 견디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말개진 가슴으로 새 힘을 낼 수도 있다. 무능, 무책임, 몰지각, 불감증, 탐욕… 당신들의 ‘성숙한’ 국민들은 모두 용서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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