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부 차원의 을지로위원회 설치가 사실상 무산됐다. 청와대가 대통령직속위원회를 더 이상 늘리지 않기로 한데다, 위원회가 행정부처 역할을 침범하는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 한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을지로위원회는 지금과 같이 더불어민주당 소속기구로 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범정부 차원의 을지로위원회 구성은 ‘갑’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중 하나다.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련부처에 분산된 정책 및 사건을 협의·해결할 범정부 차원의 기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사정만으로 본다면, 대국민 약속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범정부 차원의 을지로위원회 구성이 무산된 배경엔 행정기관과 행정력 중복에 따른 낭비를 이유로 공정위와 검찰이 반대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과 공정위가 제 역할을 하지못해, 그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당시 야당인 민주당 당내기구로 을지로위원회가 출범한 것인데, 이게 사실이라면 적지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경제민주화네트워크, 참여연대 등이 지난 10월6일 국회에서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대책마련 및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을지로위원회>

돌아보자. 을지로위원회는 2013년 출범, 우리사회에서 을(乙)을 지키는 길(路)을 찾고, 법(law)을 통해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해 노력(勞力)했다. 불공정·불평등에 맞서 정치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답하고자 했다. 그래서 약자들에게 힘이 되는 정치, 공정하고 차별없는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맹점·대리점에서의 불공정행위, 비정규직 문제, 하도급에 대한 원사업자의 갑질,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등 사회경제적 약자의 편에서 국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음을 우린 기억한다.

최근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경제민주화네트워크 김남근 정책위원장은 을지로위원회가 그동안 우리 정당정치 활동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국회의원만 하는 정치가 아니라, 밑에서부터 대중들과 삶·현장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정치의 모범을 을지로위원회가 보여줬다고 말했다.

불공정한 시장질서에서 발생하는 갈등문제는 어느 한 부처의 행정력과 역량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안에 따라선 현안갈등과 이런저런 관계를 갖는 정부 부처간 협업을 통해야만 근본적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껏 관행은 부처간 완강한 칸막이와, 자신의 성과가 아니면 나서지 않으려 하는 부처 이기주의로 협업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시스템이다. 그동안 을지로위원회는 다양한 부처의 협업을 이끌어내 사회적 갈등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서 역할을 했기에 그 필요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대통령과 공정거래위원장이 바뀌었을 뿐,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관료들은 사실상 그대로다. 수십년이상 ‘찬밥’ 신세였던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한 ‘대접’도 아직까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을지로위원회가 힘을 갖고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기에, 을지로위원회가 범정부 차원의 기구로 확대·강화되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크다. 새로 출범한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 역할을 할수 있을지 지켜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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