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혼술’ 보다는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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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혼밥혼술’ 보다는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 순간적·우발적 공동체 만들다…‘관계예술’ 음식 대접 프로젝트㊤

기사입력2017-12-12 11:06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큰 물통에 물이 끓고 있다. 그 물통은 가스버너 위에 놓여 금속으로 만든 곤돌라 속에 있다. 금속 곤돌라 주변에는 캠핑용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리고 가까운 벽 쪽에는 중국식 건조수프가 들어 있는 종이 상자들이 놓여 있다.

이것은 전시장 풍경이다. 1993년 열린 45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젊은 작가 특별전 ‘아페르토 ’93(Aperto ’93)’에서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1961~)가 설치해놓은 작품의 모습이다. 관람객들은 곤돌라 위에서 끓고 있는 물을 종이 상자에 부어 수프를 먹는다. 이렇게 관람객들이 함께 모여 수프를 먹는 것이 작업이다. 이 작업이 바로 타라바니자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음식 대접 프로젝트’다. 관람객이 음식을 먹는 것이 예술이라고?

요즘 많은 사람이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신다. ‘혼밥혼술’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이제는 홀로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 크게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1인 가구 500만 시대.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이 혼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쩌면 혼자 음식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 필연적인 현상인 줄도 모르겠다. 이렇게 개인화, 단독화된 시대에 함께 음식먹는 것은 예술이 됐다. 아이러니하면서도 어떤 측면에서는 당연해 보인다. 예술은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끌어내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섞이기를 싫어하는 현시대에 잠시나마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순간적 공동체, 우발적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 이 시도가 예술로 불리게 되었다니 과연 예술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NYC 1993’ 전시에 설치된 음식 대접 프로젝트, 2013, 뉴 뮤지엄(New Museum), 뉴욕.<출처=http://www.contemporaryartdaily.com>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이 전부인 이러한 작품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태국 국적을 지니고 뉴욕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대표적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을 퍼포먼스라고 해야 할지도 의문이다. 작가는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하고, 관람객은 함께 그 음식을 먹는 것이 작품의 전부인데, 누가 작품의 퍼포머이고 누가 감상자란 말인가? 퍼포머는 작가인가? 관람객인가? 그렇다면 감상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작품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은 뒤로하고, 티라바니자의 소위 ‘음식 대접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러한 작업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일 듯하다. 티라바니자는 1990년 뉴욕의 폴라 알랜(Paula Allen)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음식 대접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그 작업 제목은 ‘무제(팟타이), Untitled(Pad Thai)’였다. 팟타이(Pad Thai)는 대표적인 태국의 쌀국수 요리로, 작가는 그 전시에서 팟타이를 관람객들에게 만들어 주며, 음식을 먹는 모든 이가 음식 먹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음식 대접 프로젝트는 이후 1992년 뉴욕 첼시의 303 갤러리에서 ‘무제(무료), Untitled(Free)’라는 작업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이 작업을 세계적으로 선보였다. 이후에도 1995년에는 ‘무제(여전히), Untitled(Still)’를 통해 쌀국수 팟타이와 그린 커리(green curry) 등의 음식을 대접하며 이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갔다.

2011년과 2013년에는 MoMA(뉴욕현대미술관)를, 2012년에는 MoMA PS1을 음식냄새가 풍기는 미술관으로 변모시켰고, 2012년에는 파리의 그랜드 궁전(Grand Palais)에서 12시간 동안 태국의 수프인 똠카까이(Tom Ka Gai)를 대접하는 ‘Soup/No Soup’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뿐 아니라, 2015년에는 아트바젤(Art Basel)에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을까, Do we dream under the same sky’라는 음식 대접 프로젝트를 행했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을 대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