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이라도 ‘환자가 행복해야 의사가 행복하다’고 해야 하는게 아닌가? 이 자리에서 의사집단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하거나, 의료인의 사회적책무를 강요할 생각도 없다. 그렇더라도 환자의 불행을 볼모로 잡아 의사의 행복을 추구하겠다니 기가 찰 일이다. ‘기업이 잘돼야 노동자와 국민도 잘 산다’는 철지난 낙수효과의 의료버전인 셈이다. 되짚어 보면 국민 겁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주말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도 행복하다’는 피켓을 들고 의사 3만명(경찰추산 7000명)이 거리로 나섰다. ‘문재인 케어’의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의 의료개혁을 ‘선심성 생색내기’로 규정하고, 비급여항목의 전면급여화는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국민건강 수호’라는 명칭까지 붙여가며 비상대책위를 꾸렸지만, 국민건강보다 자신의 ‘기득권 수호’가 먼저라는게 국민의 판단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훌륭한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사각지대는 하루빨리 해소해야 할 문제다. 중증환자 의료비부담을 줄여 가계파탄을 막는 일 또한 시급한 일이다. 그래서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는 ‘문재인 케어’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지만 환영할 만하다. 또 선택진료비를 폐지하고 상급병실료 부담을 줄이는 등 비급여항목의 급여화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문제는 비급여항목이 의사의 수입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비급여를 전부 급여화한다면 중소병원, 동네의원들의 수익구조가 나빠진다는 주장도 전혀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그렇더라도 지금과 같은 허술한 보장 때문에 중증환자를 둔 가정이 궁핍으로 내몰리고, 민간의료보험에 2중 3중 보험료를 지급하는 불합리를 그대로 방치할 순 없다. 병원 또한 국민의 지탄을 받아가면서까지 비급여항목으로 수입을 보장받아서도 안되는 일이다.

문재인 케어 구상에서 정부가 밝힌 소요예산은 2022년까지 30조6000억원 규모다. 건강보험 누적흑자를 활용하고 평균인상률을 유지하면 국민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보장률 70%를 달성할 수 있다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의사들의 의구심도 여기에 있다. 적정의료수가를 보장받을 길이 더 어려워 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의사들의 반발을 키웠다. 

문재인 케어, 방향은 옳다. 의사들의 항의집회 이후 정부와 여당은 ‘의료계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달래기에 나섰다. 이제 의사들이 답할 차례다. 여전히 문재인 케어의 전면 철회를 주장할지,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할지는 의사협회 몫이다. 하지만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도 행복하다’식으로, 국민건강을 담보로 한 파업은 결코 국민의 동의나 지지를 받기 힘들다.

정부도 ‘건강보험료 인상은 일절 없다’는 주장을 앞세우면서 문재인 케어를 홍보하지 않았으면 한다. 차라리 가계에서 빠져 나가는 민간보험료를 흡수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 의사도 국민에게도 나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케어를 지키고 키워내는 것,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국민 모두가 고민해야 할 일이다. 국민이 행복해야 의사도 국가도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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