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을 안 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같은 구매대행사업자는 인증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것이 전안법의 구조다. 시작부터 잘못 만들어진 전안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지 않으면 더 많은 편법과, 사업자들의 해외이탈이 발생할 것이다.”

해외구매대행업을 하고 있는 한 사업자가 최근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이 요구하는 KC인증을 받으려면, 인증기관에 해당 제품의 샘플과 서류 등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구매대행의 경우 재고를 보유하지 않는 것이 구매대행 사업의 충족요건이고,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구매절차를 대행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KC인증을 받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일부 사업자는 해외에 본사를 두고 법망을 피해 영업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전안법 전부개정안의 연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지면서 소상공인들은 비상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하고, 20일이 돼서야 급하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전안법 전부개정안이다. 그러나 22일 열릴 예정이었던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퇴장으로 무산된 후, 여야는 아직까지 본회의 개최 일정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연내 본회의를 열지 못할 경우 전안법 전부개정안의 연내 통과가 불가능하다.

올해 말까지 일부 조항의 유예기간을 뒀던 전안법이 당장 내년 1월부터 다시 시행되면 의류, 액세서리, 잡화 등 모든 생활용품의 KC인증이 의무화된다. 의무 인증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소상공인에겐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거나, 사안에 따라 5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소상공인들은 인증을 받지 않고 전안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되거나, 높은 인증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안법 개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은 인증을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는 혼란에 빠져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전안법을 반대하는 청원에 21만1064명이 참여를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소상공인들에게 전안법의 적용 대상 여부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은 2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한국당 당리당략에는 민생이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며 “자유한국당은 수백만의 소상공인을 범법자로 만들 셈이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행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전안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추진하기 위해 3당 교섭단체와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27일 밝혔다.

국민 생활안전과 소상공인의 생존권 어느 한쪽이 양보하기가 쉽지 않은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올 한해 동안 전안법의 합리적인 개정을 위해 소비자단체, 학계, 관련 업계 당사자들이 만나 토론회와 간담회 등을 거쳤으며, 지난 9월 이훈 의원 대표발의로 전부개정안이 마련됐다. 법 제정 과정에서 공청회조차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만든 정부의 실책을 국민 당사자들이 나서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전부개정안 또한 완벽한 법안은 아니지만, 향후 국민안전과 소상공인보호를 위한 다음 단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새해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오늘도 전안법 개정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 소상공인들에게 국회가 정치적 다툼만 하면서 절망을 줘서는 안된다. 할 일은 하고 싸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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