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한 제품의 환불처리가 지연돼, 해가 바뀌자마자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3일간 이어진 연휴 탓인지 15분가량을 기다려 겨우 연결된 상담원의 목소리는 이른 시간임에도 꽤 지친 듯했다. 환불처리 절차를 안내하는 목소리는 기계적이었고, 설명도 무미건조했다. 안내처리를 받는 도중 잠시 시간이 생겨 “오전부터 바쁘시죠~?”하고 물었더니, 상담원이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 아침부터 업무가 많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괜스레 미안해서 전화 말미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했더니, 밝은 목소리로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던 목소리가 오전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고객센터 상담원과 같이 감정관리 활동이 직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대인 서비스업 종사자를 ‘감정노동자’라고 부른다. 다수의 고객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해야 하는 항공기 승무원, 마트나 백화점 판매업·경비원 등의 직군이 이에 해당한다. 노동자가 아무리 친절하게 응대했더라도 고객이 친절하다 느껴야만 친절한 서비스가 되기 때문에, 고객응대업무는 노동자의 감정보다 고객의 기분을 중요시 여길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전체 임금노동자 1829만6000명 가운데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560만~740만명, 전체 임금노동자의 31~41%에 이른다. 일하는 사람 3명 가운데 1명이상이 감정노동자일 정도로 많다. 

감정노동자들은 감정을 숨기고 고객의 응대를 맞춰야 하기에 심각한 정신적·신체적 문제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과 노동환경연구소의 ‘감정노동종사자 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감정노동자의 48.9%가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30.6%가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었고, 심지어 4%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 

이같은 심각한 상황에도, 감정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수준은 취약하다. 금융권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권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지 1년여가 지났지만 정착은 커녕, 존재조차 모르는 기업이 4곳 가운데 3곳이라는게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감정노동자 보호법 제정을 공약했고, 고용노동부도 지난해 연내 입법을 약속했지만 동법은 해를 넘겨 국회에 계류중이다. 고용노동부 법안에 따르면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이나 폭력, 폭언 등의 피해를 입은 감정노동자에게 일시적으로 업무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업무중지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업주에게 제재를 가하도록 했다.  

국회는 하루 빨리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절차를 마쳐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사업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감독를 해야 한다. 아울러 ‘손님은 왕이다’라는 고객들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감정노동자도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빠이며, 가족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해를 맞아 따뜻한 한마디 인사를 건내보는 것은 어떨까. 별 것 아닌 인사가 누군가에게 큰 위안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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