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고 울어 버릇하지 마. 어차피 내일도 힘들어.”

영화 ‘스물’에 나온 대사다. 공교롭게도 지금 카페에서 본 문서작업을 하고 있는 필자의 왼쪽엔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이, 오른쪽엔 입사지원서를 앞에 두고 고민하는 젊은 청춘이 앉아있다.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서적이 주목받으며 젊은 고민을 당연한 아픔인 듯 포장했지만, 이제 젊음은 아픔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젊음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픔을 극복하고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같은 고민을 품에 안고 작품으로 위로를 건네는 작가가 있다. 나비를 꿈꾸는 작가 홍민지를 만나보자.

Age of diseases_Mixed Media_2017

작품이 독특한 조각 형태를 띠고 있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간단히 소개해달라.

저는 스스로를 젊고 성장해가는 작가라고 생각하면서 제 얘기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보통 잘 집중하지 않는 먹이사슬 아래있는 연약한 존재를 동물과 같은 직접적인 형체를 통해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종종 제 작업을 일기체적 작업이라 얘기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제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의 소재가 초기 동물이나 물고기에서 애벌레로 변해간 계기가 있었는가?

사실 좀 종교적일 수 있지만, 성경책을 보면 사소한 매체나 연약해 보이는 자들을 통해 기적을 보여주잖아요. 소박하지만 약자에게서 시작되는 변화에 대한 관심으로 ‘양’이라는 소재로 처음 페인팅을 시작했었죠. 그 후 물고기 형태의 작업을 했고요. 굉장히 직설적일 수 있는데, 물고기를 잡을 때 그보다 더 연약한 지렁이 같은 생명체를 쓰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좀 더 연약한 소재로 바뀌어 온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결과물 이전에 작업을 위해 애벌레처럼 실을 감는다는 행위 자체에 관심이 커져서 애벌레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작품에 대한 접근법 자체가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느껴지는데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느끼길 바라는가?

많은 작가들이 그런 것처럼 저도 감상자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다 다르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기다림의 시간들이 있잖아요. 그 시간들을 공감할 수 있는 정도면 쉽게 접근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근데 꼭 그렇지 않아도 조형적으로 어 신기하다, 예쁘다, 그로테스크 하다 뭐 이런 직접적 반응들도 좋은 것 같아요. 그렇게 자유롭게 즐기는 게 사실 맞는 것 아닌가요?(웃음)

2015년 설치 작업 이후 나비 형상의 설치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화된 계기나 이유도 있는가?

애벌레 모형을 만들 때 고치에 실을 감으며 만들다 보니 실이라는 소재를 많이 쓰게 됐어요. 그러다 명주실로 작업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단순하게 하게 됐죠. 마침 작업실에 먹다 남은 와인이 있어서 명주실을 거기에 염색해보니 그 색감이 또 너무 예뻐서 작업에 활용해봐야겠단 생각으로 접근하다 보니 와인이 갖는 종교적 상징이나 누에고치가 실을 만드는 행위에 접목시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실험적으로 제작하며 확장되어 온 형태가 나비였어요. 그래서 나비 형상의 작업은 좀 더 유기적인 형태를 띠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본인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을 소개해준다면?

Cocoons_Mixed Media_2016

‘Cocoons’가 기억에 나네요. 애벌레가 고치가 되면서 그 안에 숨어서 나비가 되기 위한 시간을 버텨나가는 것처럼 제가 처해있는 젊은 작가라는 시간도 그와 닮아있는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았던 작품이에요. 그리고 설치 작업이다 보니 공간 속에 형성되는 그림자의 형상이나 감상자와 상호 작용하며 나오는 결과물들이 마음에 들어 재미있기도 했고요. 사실 했던 작업들 중 가장 큰 규모의 작업이기도 해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작품이 인터랙티브한 성향도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영향을 받거나 영감을 주는 작가가 있는가?

너무 많은데요. 레이첼 와이트 리드도 좋아하고요. 루이스 부르주아도 좋아하고요. 많은 작가들을 좋아하지만 보통 감성이 비슷한 부분이 있고, 공감이 많이 되는 작가의 작품들을 좋아하고 영향도 받은 것 같아요.

작품의 형태적 특성상 구매가 힘들 것 같은데 수집가들에게는 작품을 어떻게 판매하고 있는가?

기존에는 부조 형태의 작품들만 판매가 됐었는데, 설치작업이 판매가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설치작가들은 사실 커미션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설치 후 해체되는 경우가 많아서···. 모르겠어요. 팔면 좋기야 하겠지만, 당장은 판매적인 측면보다 작업 자체에 집중하고 있어요.

학업을 마치고 미국에서 계속 작업하지 않고 한국에 돌아와 작업하는 이유와 그에 따른 작가로서의 힘든 점이나 고민이 있는지?

졸업을 하고 반년 후 돌아왔는데요. 사실 금방 돌아온 이유 중 하나가 학교에 불이 나서 졸업을 하고 제 작품이 다 불에 탔어요. 그래서 재료도 없고 작업도 없다 보니 미국에서 막연히 다시 시작하기 두려웠고 자연스레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왔던 것 같아요. 작가로서의 고민은···, 제가 결혼도 하고 임신도 하게 되면서 어떨 수 없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부분이 고민이에요. 남편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많이 도와주지만, 여자 작가로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그 압박과 고민이 쌓여서 “내가 과연 예술가로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라는 원초적인 고민을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지금 머물고 있는 대전의 공모와 레지던시 지원을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설치 작업에는 공간이 많이 필요한데 저에게 주어진 공간이 크지 않아서 회화나 영상 같은 매체 실험도 해내가려고 해요. 그리고 관람객이 좀 더 깊게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아트도 더 많이 활성화해서 하나의 작품이나 색깔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로 스스로를 완성시켜 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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