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설립취지와 달리 영리목적의 출판사업을 함으로써 침체된 출판업계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공기관 상당수가 국민세금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유가도서로 제작·판매해 수익을 올림으로써 ‘이중수혜’도 누린다는 주장이다.

한국출판학회 백원근 출판정책연구회장은 최근 열린 ‘출판문화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공공기관이 재정과 권력을 앞세워 민간으로부터 필자를 빼앗고, 영리적으로 출판함으로써 출판업시장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 회장에 따르면 한국국방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등은 전담 출판부서까지 있으며, 도서를 제작·판매한다. 또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은 유가 출판물을 서점을 통하지 않고, 자사 홈페이지에서 직판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한국문화재단의 경우는 자체 생산한 연구자료를 책으로 만들어 비싼 가격으로 서점을 통해 유통하면서, 이들 연구자료를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백 회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무역투자진흥공사가 발간하는 해외업체 명부의 가격은 대략 10만원 수준”이라며 “세금으로 생산한 성과물은 국민들이 부담없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회장은 이와함께 도서판매에 따른 공공기관의 ‘이중수혜’도 주장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출판물 9종이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것과 관련해, “정부지원으로 제작한 유가도서를 정부예산으로 선정·구입해 이중수혜를 누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와관련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은 “현재 도서를 제작 판매하지 않고 있으며, 홈페이지를 통해서 직판도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 문화홍보부 김승룡 차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2015년까지는 정기간행물을 발행해 PDF파일을 무료로 공개하는 동시에 우편요금 명목으로 연간 1만원을 받고 판매한 적이 있으나, 현재는 파일공개만 할뿐 판매는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2년전쯤 기사수험서를 출판하기도 했으나, 시중에 기사수험서가 생겨나면서 현재는 출판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출판을 하지 않게 된 후에도 홈페이지 및 블로그에 간행물 신청 게시물이 올라와 있어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빠른 시일 내에 내부 시스템을 정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설립목적과 달리 영리목적의 출판사업을 함으로써 침체된 출판업계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나온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또 한중연 대외협력팀 김은양 언론홍보 담당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한중연은 연구기관이고, 도서를 발간하는 목적은 영리가 아니라 학문적 가치추구”라며 “일부 연구서는 국내에 유통되기도 하는데 규모가 크지 않고, 대중성이 없기 때문에 영리 출판산업을 침범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중수혜’ 주장에 대해서는 “한중연이 학술원사업에 지원하는 이유는 경쟁을 통해 학술수준을 제고하기 위함이며, 저자 요청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중연의 이같은 설명에 대해 백 회장은 “한중연 역할은 한국학 연구이지, 출판이 아니다”라며 “연구성과를 보급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민간 출판사를 통해 유통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에따라 백 회장은 실태파악을 위해 공공기관 상업출판을 전수조사해 줄 것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요구했다. 아울러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등을 개정해 공공기관의 상업출판을 포함한 영리행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백 회장은 공공도서관이 진행하는 도서기증 캠페인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출판시장에 판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할 공공도서관이 시민들에게 도서를 기증받음으로써 오히려 출판유통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백 회장은 희귀본과 절판본을 기증받아 시민들에게 희소성 있는 도서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라면 공공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그 범위를 일반 도서로 넓히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추진해 온 도서기증 및 나눔운동인 ‘책다모아’ 프로그램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책다모아 프로그램으로 기증받은 헌책은 작은도서관, 병영도서관, 지역아동센터 등에 다시 기증되는데, 이들 도서관에서 기증받은 책의 비중이 높아지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독자에게 맞춤형 도서를 제공할 수 없고, 이로인해 도서관 이용자가 증가하기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백 회장은 “결국 예산문제”라며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운영하는 공립도서관이 늘어나고 있는데, 지자체가 이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이 부족하다보니 예산책정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도서관이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등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장식품으로 전락했다”면서 “주민들은 신간을 원한다. 국민들에게 도서를 기증받을 것이 아니라 예산을 투자해 주민들이 원하는 도서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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