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과 청년구직촉진수당 등 복지수당의 일부를 상품권형 지역화폐로 지급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지역화폐를 활용, 지역경제를 살리고 경제성장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얘기다. 그러나 부자 지자체의 소비가 다른 지자체로 넘어가지 못해 지역 경제적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울산과학대학교 김병조 겸임교수는 5일 더불어민주당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중소자영업자 대책TF’와 정책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자영업자를 위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기초연금의 30%를 지역화폐로 지급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 팔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지역 입장에서 기존의 현금지급 방식보다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서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서민 소득증대에 기여”

국내 지역간 경제적 격차와 불균등 성장은 심화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기준 국내 GDP(명목) 약 1565조원 가운데 서울지역이 344조원으로 대략 22%다. 또 전국의 총부가가치 1424조원중 서울이 315조원(22.12%)을 차지한다. 지역간 경제적 격차와 불균형은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서민과 중산층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특히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우 지역상권을 둘러싼 젠트리피케이션, 대기업 대형마트와 SSM(Super SuperMarket)의 시장잠식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6년기준 56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30%가 최저생계비 미만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월소득 100만원 미만인 경우도 74만명에 이른다. 지역 경제주체들이 일자리 창출, 소비와 판매를 통한 내수진작 등 지역경제의 중추라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따라서 지역화폐를 적극 활용하면, 이들 지역 경제주체의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현재 통용 지역화폐와 신규 지역화폐 비교

<자료=‘자영업자를 위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토론회 자료집 재구성>   ©중기이코노미

중앙정부·지자체가 연금이나 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

지역화폐는 ‘한정된 지역, 특정한 조건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는 매개수단’을 의미한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와 더불어 기존 화폐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화폐’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국내에선 세가지 종류의 지역화폐(상품권)가 통용된다. 먼저 지역단위에서 회원 상호간 자체적으로 활용하는 지역화폐, 예컨대 한밭레츠 회원간 통용되는 ‘두루’가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지역화폐로는 성남시가 발행하는 ‘성남사랑상품권’, 그리고 중앙정부가 전국단위로 발행·관리하는 ‘온누리상품권’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화폐로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예컨대, 현행 ‘온누리상품권’은 정부가 발행·관리해 효율성과 공신력이 있지만, 중앙에서 집행하다 보니 지역사회와의 연관성이 낮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게 쉽지 않다. 

또 기업과 공무원의 소비에 의존하고 있어 자생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가 발행하는 ‘성남사랑상품권’의 경우 지자체 차원의 효율성과 공신력을 갖추고 있고 지역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이 역시 지자체의 지원과 공무원 소비에 의존하고 있으며 가맹점 수를 확보하고 제도를 활성화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김 교수는 중앙정부가 재원을 부담하고 지자체가 관리·운영하는 새로운 유형의 지역화폐를 공급해,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의 매출을 근본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기초연금 연동형 지역화폐 상품권(GLC-BP)’이 이에 해당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연금이나 수당을 상품권처럼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이를 사용자와 소비자가 지역에 있는 가맹점을 방문하면 제한없이 사용 가능하다. 전국보다는 범위가 한정돼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고, 현재의 시·군·구 단위보다는 넓은 광역시와 도 단위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다. 가맹점 입장에서는 다수의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고, 광역지자체 입장에서는 시·군·구를 벗어나 지역특화적인 정책도 내놓을 수 았다.

기초연금제 상품권형 지역화폐의 지역순환 경로

<자료=‘자영업자를 위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토론회 자료집>

지역화폐 생산유발효과 있지만, 지역격차 더 커질 수도

김 교수는 기초연금의 30%를 지역화폐로 지급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 팔도록 하면 지역내 생산유발효과 113%, 부가가치유발효과와 취업유발효과가 각각 112%씩 늘어날 것으로 계상했다. 

김 교수는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거시경기는 부양되고, 국민경제가 선순환 된다는 로드맵의 출발이 지역화폐”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초연금 외에도 청년구직촉진수당, 아동수당, 양육수당, 출산지원금, 근로장려금,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을 활용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화폐에 대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진승호 수석전문위원은 “연금과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주면 지자체내 소비가 늘어나 지역 간 경제격차가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부자 지자체의 소비가 다른 지자체로 넘어가지 못해 지역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새로운 상품권이 만들어지면 별도의 행정이 필요하고, 가맹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원종현 조사관 또한 “온누리상품권 등이 중고장터에서 70~80%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은 그만큼 현금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할인이나 혜택을 주는 등 지역화폐 사용에 이점이 있지 않는 경우 소비자나 가맹점이 굳이 상품권을 이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민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기초연금만을 지역화폐로 쓸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임금 상승분을 지역화폐로 활용하거나, 납세 대용품으로도 쓰일 수 있도록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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