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밀양 세종병원에서 192명의 사상자를 낸 화재가 발생했다. 병상을 무리하게 확대하고 인력을 충원하지 않은 것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016년 진료기준 의료법상 세종병원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상근인력은 의사 6명, 간호사 35명이었지만 실제 근무인원은 비상근 1명을 포함해 의사 3명, 간호사 6명뿐이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 아산병원 신입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육을 빙자한 괴롭힘과 함께 인력부족에 따른 과도한 업무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보건의료분야 인력부족 사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보건의료분야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을 개선함으로써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근로조건 개선을 통한 인력수급난 해결”=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27일 ‘보건의료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새로운 교섭체제와 사회적 대화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열린 산별노조 창립 20주년 국제 세미나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은 최고의 과제”라며 “근로조건 개선을 통한 인력수급난 해결은 보건의료노동자의 가장 절박한 요구이고, 현정부의 좋은 일자리 창출과도 일맥상통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나 국장은 보건의료분야 인력수급 불균형의 원인으로 열악한 근로조건을 꼽았다. “보건의료분야는 심각한 인력부족을 겪고 있다. 인구 1000명당 간호조무사를 포함한 간호사수는 5.9명, OECD평균 9.5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근무자가 적다보니 업무강도가 높고 일자리 질은 낮다”고 설명했다. 

간호사 1인당 담당환자 비율은 한국이 15~20명, 영국 8.6명, 일본 7명, 미국 5명이다. 한국의 경우 자격증은 있으나 활동을 하지 않는 유휴간호사 비율도 38%에 이른다. OECD 평균 유휴간호사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이날 이문호 워크인 연구소장도 “정부가 보건의료분야에서 좋은 일자리가 일자리 창출의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분야는 인력수요가 많고 공급도 충분하지만, 좋은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래픽=조한무 기자>   ©중기이코노미

◇“공급측면 개선책, 근본적 해결방안 아냐”=OECD 평균보다 많게는 19배, 지나치게 높은 유휴간호사 비율과 관련, 나 국장은 “정부와 사용자는 배출되는 인원이 적기 때문에 공급측면에서 개선책을 찾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방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과다한 업무량 등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이 인력수급난 해소를 위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간호사의 잠재이직률은 58.2%다. 이직고려 이유로는 열악한 근무조건과 노동강도가 40.3%로 가장 높았고, 낮은 임금이 16.0%로 뒤를 이었다. 근무경력 6개월이하 신규간호사 평균 이직률은 33.9%에 이른다. 

간호직무의 특성상 ‘희생’을 요구하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차치하더라도, 간호사직이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보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근로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인력수급문제 개선은 요원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근무시간, 교대근무, 야간노동 개선” 요구=노조측은 노동시간, 교대근무, 야간노동 등의 개선책을 요구했다. 

노동시간단축과 관련, 특히 시간외근무를 줄여줄 것을 요구했다. 시간외근무 실태파악을 위해 사용자에게 근무시간기록 의무를 부과하고, 조회·교육·회의·행사·대기시간 등을 근무시간에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송금희 원주연세의료원 지부장은 “실제 현장에서는 물품 체크를 동반한 인수인계가 30분에서 1시간까지 소요돼, 조기출근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교대근무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근무제 개발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했다. 나 국장은 “24시간 운영이 불가피한 병원이 있다”며 “야간근무와 교대근무제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통해 교대근무제 모형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린다 실라스 캐나다 간호사노조연맹 위원장은 “병원은 24시간 내내 돌아간다. 일과 휴식 균형이 중요하다”며 “8시간 3교대, 12시간 2교대 등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어느쪽이든 최소한의 휴식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는 표본단체협약서에 최소 휴식시간, 연속근무일수 등이 명시돼 있다”고 덧붙였다. 캐나다 알버타주 간호사협회 표본단체협약서는 야간에서 주간교대로 전환할 경우 최소 15시간을 쉬어야 하며, 6일이상 연속근무는 불가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야간노동과 관련, 노조측은 안전보장과 업무량 조절을 위해 야간근무시에도 낮·저녁근무와 동일한 인력을 배치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의사의 업무지시를 조절하는 등 노동강도를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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