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사망자 51명 등 192명의 사상자를 낸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은 중소병원이 가진 문제점이 집약된 결과다. 병상이 95개에 이르지만, 근무인원은 의사 3명과 간호사 6명이 전부였다. 의료법상 필수인원보다 의사는 3명, 간호사는 29명 모자랐다. 화재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지방엔 중소병원이 넘쳐나는 반면, 인력이 부족해 의료서비스 질도 낮다. 이 때문에 중소병원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퇴출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소병원 공급과잉은 사익추구 보건의료체계 때문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임준 교수는 6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주최한 ‘중소병원 의료서비스 질,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중소병원 공급과잉이 사익추구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을 통한 일부 의료재원 조달, 병원의 영리법인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법·제도적 장치를 제외하면, 대부분 시장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조절되는 보건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중소병원이 난립하고 무한경쟁을 반복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적했다. 먼저 병원과 의원간 의료서비스 전달체계 확립을 어렵게 한다고 했다. “중소병원 과잉은 병원과 의원의 기능 및 역할정립을 어렵게 만들어,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중소병원이 2차병원 역할을 수행할 정도의 규모와 의료수준을 확보하지 못했고, 의원과 경쟁함으로써 병·의원간 협력적인 관계 설정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통상 의원은 1차, 병원은 2차의료기관 역할을 한다. 의원에서 치료가 어려우면 병원을 찾게 되는데, 중소병원 의료수준이 낮다보니 병·의원간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료=보건복지통계연보>   ©중기이코노미

병상이 적은 중소병원은 환자 사망비율도 높았다. 임 교수가 입원 및 중증응급질환 환자의 사망비율을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사망비가 높은 지역은 300병상미만 중소병원을 이용한 비율이 높았다. 반면, 500병상 규모의 지역응급의료센터가 설치된 종합병원을 이용한 비율이 높은 지역은 사망비율이 낮았다. 

임 교수는 “중소병원은 응급상황에 대한 진료가 미흡해, 대형병원으로 이송하는 중에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적정 병상규모에 미달하는 병원은 의료의 질적 수준이 낮고, 환자 안전사고 발생률도 높다”고 설명했다.

중소병원 난립…신규진입 억제 등 공급구조 개혁해야  

임 교수는 중소병원 난립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 공급측면에서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향후 보건의료 수요와 공급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병상 공급과잉을 주도하는 중소병원의 무분별한 신규 진입을 억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필요한 의료기관에 대한 ‘출구’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의료전달체계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의료기관의 퇴출 및 기능 재조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현행 중소병원은 지역사회에서 거점병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며 “동일 진료권에 있는 중소형 비영리법인 병원간 합병을 허용하고, 합병을 촉진하기 위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장기저리융자로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지역거점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특정 진료과목 중심의 중소병원은 전문병원으로 전환하게끔 유도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도 병원법인간 합병을 촉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윤 교수는 “수익이 나지 않아 그만두고 싶어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중소병원이 많다”며 “합병을 통해 중소병원 공급과잉을 해소하겠다는 주장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및 병원 법인간 합병 등 츨구전략도 제시를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보험급여연구실 윤영덕 실장은 정부가 중소병원 출구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병원이 합병을 했을 때 어떤 손해와 이익이 발생할지, 손해를 어떻게 보전해 줄 수 있을지 제시해야 한다”며 “공급구조 개혁을 위한 재원을 확보할 방안을 구체화하면, 공급자와의 논의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합병에는 구조조정이 따르는 만큼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보호할 방안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중소병원 개념이 뚜렷하지 않다는 문제점도 나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운영실 고선혜 실장은 “중소병원은 법정 용어도 아니고 개념도 불명확하다”며 “병원 특징과 환자 중증도 등을 바탕으로 기능과 역할을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건겅보험심사평가원에서 중소병원을 범주화하는 과정에 있다”며 “지금까지 조사에 따르면, 300병상을 기준으로 의료서비스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병원 의료서비스 수준을 평가해 페널티도 부과해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임준 교수는 병원 의료서비스 수준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도 요구했다.

이에대해 건보심사평가원 고선혜 실장은 평가자료 수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병원 모니터링은 청구명세서에 의존하고 있는데 의료행위별 수가만 알 수 있을 뿐, 진료과정과 결과는 파악할 수 없다”며 “자료가 확보되면 모니터링과 평가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평가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전산 등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진료기록을 표준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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