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파하면 으레 들렀던 진기한 물건이 가득했던 문방구. 친구들과 조잘조잘 수다떨던 떡볶이집. 엄마 심부름으로 두부사러, 동생이랑 군것질하러 뻔질나게 드나들던 동네 슈퍼. 동네 패션 일번가였던 옷가게. 반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던 철물점. 엄마들의 사랑방이었던 치킨집…. 어린시절 골목풍경이다.

이제 마을은 커졌다. 골목은 스러지고 빽빽하게 건물들이 들어섰다. 골목에 즐비하던 작은 상점들은 대형마트로, 대형상점으로 흡수됐다. 밤이 되면 문을 닫아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야했던 구멍가게 자리는 대기업 계열의 24시간 편의점이 차지했다. 나가지 않아도 집까지 제품을 당일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활발하다. 수십년 골목장사하던 김사장·박사장·이사장은 돌아오지 않는 단골손님을 기다리다 가게 문을 닫아버렸다. 정부는 ‘상생’이란 명분으로 부랴부랴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일제를 도입했다. 이미 많은 ‘사장님’이 폐업을 한 이후다. 골목은 더 이상 이들에게 ‘골디락스 영역(habitable zone)’이 아니다. 

정의당 중소상공인자영업자위원회 추혜선 의원은 14일 ‘지역사랑상품권 법안발의를 위한 토론회’를 열고, 정의당은 골목상권 회생을 위해 ’지역사랑상품권‘을 수혈하자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물론 상품권은 오래전부터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용해 왔으며, 특히 재래시장 활성화에 일정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골목상권 전용화폐가 재래시장을 거점으로 한 골목상권 즉, 내수활성화에 집중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 몇몇 자치단체는 대형복합쇼핑물 등 외부 유출이 우려되는 상권도 지원대상으로 하는 등 ‘지역상품권=지역경제활성화’도 공식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골목상권의 실제 당사자인 중소상공인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는게 정의당 입장이다. 공감한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행정안전부 소관인 상품권 발행 및 관리 업무도 온누리상품권 발행 및 운영 등의 노하우를 축적한 중소벤처기업부로 이관하는게 맞다. 중소상공인 지원책과 병행해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편리성과 형평성 더 나아가 공정거래 차원에서 골목상권에 정부가 너무 깊이 개입하는게 적절하지 않다고 반론할 수 있다. 골목장사 역시 제 주머니에 수익을 담는 것은 마찬가진데, 굳이 이들을 위해 예산을 사용하고 소비자는 일정부분 불편을 강요받아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 입장에서, 이 물음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당부당을 떠나 좀 더 생각해보자고 말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선 골목상권을 살리는게 단지 중소상공인에게만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골목 안에는 600만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있다. 그들은 나 자신이기도 하고, 내 가족, 이웃이기도 하다. 국내 가계부채의 절반은 자영업자의 부채다. 그들의 몰락은 곧 내 가족과 이웃의 몰락이기도 하다. 이 중소상공인들이 대한민국 모든 분야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얘기다. 

공동체는 사라지고 마을은 너무 황폐해졌다. 지역의 돈이 지역을 빠져나가 서울을 기반으로 한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것. 집에선 잠만 자고 모든 소비가 대도시에서 이뤄진다면, 결국 내가 사는 동네는 날이 갈수록 황폐해진다. 그러니 골목은 살아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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