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공식사과했다. 참사가 난 지 열나흘 째의 일이다.  ‘적폐’ 근절과 국가안전처 신설 같은 대책도 내놨지만 국민의 아픔과 목마름에는 턱없어 보인다. 성난 민심에 떼밀리다시피 한 사과에서 정작 민심을 어루만질 각오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예상을 깨지 않고 국무회의 자리에서 ‘간접·착석 사과’를 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고구마 줄기처럼 얽히고설킨 총체적 부실과 비리,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전국민에게 직접 사과해야 했다. 적어도 바로 직전에 찾은 안산 공식분향소에서 가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라도 해야 했다. 사태가 수습된 후 ‘진짜 사과’를 하겠다는 계획이었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이 시점에서 정치공학적 계산이 있었을 리 없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야 한 개인의 차원에서도 두말할 필요 없이 당당하고 명예로운 것이며, 더욱이 국민을 위해서라면 수백번이라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인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공식분향소 조문에서 한 어머니가 했다는 “내 새끼지만 대통령 자식이잖아요”라는 절규가 더욱 뼈아픈 이유다.

과거의 ‘적폐’로 원인을 몰아간 것은 책임 있는 공직자의 자세로 보기 힘들다. 세월호 참사에도 다른 사고와 마찬가지로 구조적 원인, 구체적인 ‘격발’의 원인, 그리고 대응과정이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오롯이 현 정권의 책임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정부의 초동대응에 분개하고 있다. 줄일 수 있었던 피해를 오히려 키워버린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분노다. 우왕좌왕 떼거지로, 일의 우선순위는커녕 통계자료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좀비 같은 행태, 절차와 비용의 문제로 눈앞에 목표를 두고도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벌이지 못하는 한심한 복지부동은 모두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해야 하는 문제다. 좀 더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구조활동과 상황장악을 할 수 있도록, 사고 직후 강력하고 명시적인 지침을 내려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었다. “진상규명과 엄벌”보다 “적극적이고 인도적인 판단과 시행, 이를 위한 재량과 면책”이 먼저였다. 전화로라도 주문했어야 했다. 구출자 “0”에 생환은커녕 유실을 걱정해야 하는 14일째의 지옥은 어떤 변명으로도 닫을 수 없다.

과거의 적폐를 없애지 못해 “한스럽다”는 대통령의 발언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을 것이다. 집권 초기부터 창조경제와 규제완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간과한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도 한스럽다. 사회 곳곳에 만연한 뿌리깊은 파열음에는 귀막은 채 창조경제와 규제완화를 통한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편 것이, 전임 대통령이 업계의 고충을 덜어준답시고 여객선 선령 제한을 푼 것과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는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정작 ‘암 덩어리’는 남겨두고 자잘한 종기나 고치자고 허송세월한 것은 아닌가 자문해 봐야 한다. 대통령의 규제완화 방침에 공무원들은 득달같이 “몇 % 규제 감축, 언제까지 완수”라는 처방전부터 꺼내들었던 것을 국민들은 기억한다. 창조경제와 경제성장을 대놓고 꼽기 전에 기본, 안전, 부패척결과 같은 가치에 목맸으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뼈가 저린다.

이번에 대통령이 대책으로 내놓은 국가안전처 신설은 행정안전부의 안전행정부 개칭과 어떤 차별점을 가질지 의심스럽다. 소위 ‘컨트롤 타워’의 무능과 무책임을 시시각각 목도한 상황에서 부처 하나 생긴다고 대폭적인 개선이 이뤄질 것인가 동의를 보내기 힘들다. 정확한 사고 원인, 우왕좌왕 업무의 혼선을 빚은 이유, 개별 단계별 정부대응의 실패사례에 가정법을 대입한 검토 등을 마친 후에 최적의 대안을 내놔야 한다.

이번 참사의 구조적 원인인 과거의 적폐에 대해서는 더할 수 없이 공식적이고 명시적인 대통령의 근절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 일제강점기 부역 인사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얼굴색을 바꿔가며 사회를 좀먹어 온 관료의 파벌, 이와 공생 혹은 기생하며 뒤를 봐주는 정치권과 재계 등 적폐의 색출과 근절에 어떠한 종류의 성역도 인정하면 안된다는, 그 누구일지라도 칼끝이 흔들리거나 비틀어져서는 안된다는, 우리의 현재를 통째로 부정하는 뼈아픈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대로 중단하면 안된다는, 통렬하고도 비장한 각오를 전달하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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