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입법예고(2월9일) 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내용 중 법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이후 1990년 전부개정 이후 28년만에 전면개정을 하면서, 법 적용대상자인 노동계의 의견수렴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20일 국회 비정규직차별해소포럼이 주최한 ‘위험의 외주화와 균열일터 산업안전 차별해소’ 토론회에서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권혁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법위반에 대한 제재를 실효적으로 집행하기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중기이코노미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권혁 교수는 20일 국회 비정규직차별해소포럼이 주최한 ‘위험의 외주화와 균열일터 산업안전 차별해소’ 토론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법위반에 대한 제재를 실효적으로 집행하기에 미흡하다”고 말했다.

개정안을 보면, 법 위반자에 대한 징벌수준을 강화하기 위해 ▲법정형 하한선 설정 ▲수강명령제도 ▲과징금제도 등이 담겼다.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한 사업자에 대해 1년이상 법정형과 함께, 200시간내 산업재해 예방교육을 수강하도록 했다. 또 사업주가 도급금지 의무를 위반하거나 고용노동부장관 승인을 받지 않고 도급한 경우 10억원이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에대해 권 교수는 “그간 산안법상 제재가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반성의 결과로 사업주에 대한 의무이행을 강화했다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사업주에 대한 법 위반의 고의성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법부가 처벌을 주저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용절감을 위해 일부러 위험을 방치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사업주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형량만 높이면 형벌규정은 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법정형 하한선 규정에 대해서도 권 교수는 사법부가 형량을 고려함에 있어 입법의도와 달리 소극적으로 판단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형량만 높이면 형벌규정은 오히려 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며 “형벌을 가중부과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법률명확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개정안은 형벌규정의 명확성을 충분히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정형 하한이 정해지면 사업주 처벌에 대한 사법부 부담이 커져, 오히려 실제 처벌되는 경우는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과징금제도에 대해서도 사업주 이익을 회수하는 수단에 그친다는 점과 회수한 이익이 피해자인 노동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등에서 한계가 있다고 했다. 수강명령제도 역시 사업주의 의무준수를 촉구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으나, 구체적인 시행방식과 교육프로그램이 보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강명령이 단순히 창피주기, 감성적 제재에 그치지 않도록 효과적인 수강제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제재수단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 이외에도 개정안이 갖는 여러 한계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그래픽=조한무 기자>   ©중기이코노미

◇‘일하는 사람’ 보호=개정안은 입법목적을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랜차이즈업계 노동자 등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동자로 산안법 보호대상을 넓혔다. 

이에대해 권 교수는 ‘일하는 사람’의 개념범위가 지나치게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근로형태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법 취지에는 동감한다”면서도 “일하는 사람이 누군가에 대한 답은 법률이 해야 한다. 개정안은 일하는 사람이 아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을 규정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권 교수는 산안법이 보호대상을 규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산업내 모든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면, 일하는 사람이든 근로자든 굳이 보호대상을 법률에 기재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해 볼 대목”이라는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조기홍 본부장도 권 교수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개정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결국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산업법상 근로자 정의를 취업자 또는 종사자 개념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달종사자 활용한 사업주 의무부과=개정안은 플랫폼 노동자에 대해 플랫폼 사업주가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근거조항을 마련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단말기 등으로 물건의 수거·배달 등을 중개하는 사업주는 그 중개를 통해 물건의 수거·배달을 하는 사람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플랫폼 사업주가 배달종사자를 교육하기란 녹록하지 않다. 플랫폼 사업주란 ‘배달의 민족’과 같은 배달앱 중개자를 의미한다. 배달의 민족이 기업차원에서 배달종사자를 교육하기란 난망한 실정이다. 

이에대해 권 교수는 “플랫폼 사업주는 배달종사자들의 위험을 제어할 방법이 수월하지 않다.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사업에서의 산안법 규제=개정안은 프랜차이즈 사업영역에 대한 별도규정도 뒀다. 개정안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는 가맹점주와 그 소속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프로그램을 마련·시행하고, 가맹본부가 공급·설치하는 설비·기계·상품 등에 대한 안전·보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에대해 권 교수는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에 부과된 산안법상 의무가 가맹점주에게 전가될 것이라 우려했다. 안전보건프로그램 시행과 정보제공에 따른 비용을 가맹점주에게 부과함으로써 법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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