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청와대가 대통령 개헌안 내용을 발표하자,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하고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다분히 정략적인 반대라고 볼 수 밖에 없지만, 개헌발의를 문재인 대통령 본인의 임기연장으로 연결짓는 것은 헌법의 대강도 알지 못하는 막말이다. 어떤 개헌을 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는 것은 현행 헌법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개헌발의가 국회를 무시한다는 주장도 그렇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과 국회 모두 개헌 발의자로 명시했다. 법에 보장된 행위를 했다고 국회를 무시한다(?), 엇나간 궤변이다. 개헌문제에 관한 한 비난받아 할 대상은 청와대가 아닌 바로 국회다. 

지난 대선 이전부터 여야 모두 여러차례에 걸쳐 개헌을 주장했다. 또 지난 대선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포함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 모두가 ‘2018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투표를 하자’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개헌 논의를 진척시키지 못한 책임은 국회의 몫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개정된 현행 헌법은 당시로서는 직선제를 담은 진일보한 것이었다. 그러나 30년을 흘러오는 동안 빠르게 변하는 세계사적 흐름과 인권·노동에 대한 개념이 확장되면서 개정의 필요성이 곳곳에서 대두됐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진보와 보수, 여야간 입장차가 번번이 노출되면서 헌법개정에 대한 이렇다 할 진척이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대선에서, 여야 모두 그리고 유력 대통령후보 모두가 개헌투표일자를 특정한 것은 좀체 얻기 힘든 기회였던 셈이다. 

청와대가 개헌안을 발표했다. 언론은 온통 대통령 중임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국민 생활에 밀접한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우선 눈에 띄는게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근로’가 국가나 사용자를 위해 일한다는 의미라면, ‘노동’은 재화를 얻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이 일하는 것, 그 대가가 삶의 영위 수단임을 감안할 때 ‘노동’이 더 적극적 개념이고 바른 표현이라고 판단한다. 단지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일’의 주체와 목적을 분명히 함으로써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호할 근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토지공개념이나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강화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개헌안은 개인의 사유물, 부의 축적수단 정도로만 취급됐던 토지에 대해 공공재의 지위를 부여했다. 개헌안에 따라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면, 정부의 부동산대책과 국토의 효율적 이용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개헌안은 또 경제민주화를 선언적 의미가 아닌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등 공동의 이익과 사회적경제 진흥을 위해 노력하도록 국가에게 의무를 부과했다. 또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현행 헌법을 개정, 경제주체에 ‘상생’의 책무를 부과함으로써 불평등과 불공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물론 여야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진보와 보수의 관점에 따라 대통령 개헌안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개헌은 시대적 요청이고 정당과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이다. 이제와서 시기의 촉박함을 이유로 대안없이 미루자는 주장이나,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이라며 국회 심의·의결에 참여하지 않는 행태는 국회의원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자 정당의 폭거와 다르지 않다.

30년이 지난 헌법, 이제 대한민국도 시대에 맞는 새 헌법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됐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발걸음을 멈춰라. 대통령 개헌안이 마음에 안 든다고 비판만 하지 말고, 이제라도 개헌안과 개헌 일정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