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대리점과 함께 가격담합을 벌인 유한킴벌리는 본사만 처벌을 받지 않았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담합사실을 먼저 자진신고하면, 과징금이나 검찰 고발 등의 처벌을 면제받는 리니언시 제도를 활용했다. 유한킴벌리 본사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담합에 참여했던 대리점들만 수천만원의 과징금을 물었다. 

공정거래법이 금지한 부당공동행위에 대한 제재수단이 효과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던 대표적인 사례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미스터피자의 ‘갑질’, 골프존의 스크린골프사업자에 대한 불공정행위 등 ‘갑질없이는 기업운영이 안되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불공정행위는 이미 관행화됐다. 공정거래법 제정 후 38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시장환경에 맞게 공정거래법을 전면 개정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공정거래법 전면개정 ‘재벌·갑을·공정행정’ 개혁 내용 담아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남근 부회장(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 최열 의원과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참여연대가 25일 공동주최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 방향을 논하다’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정거래법 전면개정 논의에서는 시대적 과제인 ‘재벌개혁’, ‘갑을(甲乙)개혁’, ‘공정행정개혁’의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공정거래법 입법당시 주로 일본의 공정거래법 체계를 계수하는 방식으로 입법됐고, 입법과정에서 각국의 입법례와 한국의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법안 내용이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은 1980년 12월 제정됐다.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38년동안 시장독과점 심화, 재벌 기업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등 시장경쟁환경의 변화가 있었다. 이를 반영해 공정거래법도 큰 개정만 27차례, 총 60여차례 바뀌었다. 

적지 않은 개정을 했음에도 공정거래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누더기처럼 깁기만 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산업구조의 특성과 시장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소나기 피하기에 급급했단 얘기다. 

예를 들면,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시장지배적 남용행위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피해 당사자 자신이 신고대상 사업자가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음을 입증해야한다. ‘을’의 위치에 있고, 시장질서에 대한 전문적 식견조차 없는 피해자가 이를 입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1999년 도입된 지주회사 제도는 재벌집단의 지속적인 반발과 규제완화 요구로 규제라는 말조차 무색하단 지적도 있다. 재벌그룹 계열사는 문어발식으로 확장됐고, 이들이 중소기업·자영업자가 영위하는 적합업종에 이미 진출했거나, 넘볼 수 있는 이유도 무기력한 공정거래법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김 변호사는 “경제민주화와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은 공정거래법이 시대정신을 얼마나 반영하고, 당국이 공정하게 집행하느냐에 달려있다”며 “사법부가 입법취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법적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들도 공정하게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법체계 등을 제정 수준으로 전면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과점 시장구조와 시장지배적 남용행위 개혁=공정거래법은 독과점의 폐해로부터 시장의 경쟁을 보호하는 것을 숙명으로 한다. 재벌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구조 개선을 위해 김 변호사는 ▲기업분할명령제, 계열분리명령제 등 독과점 시장구조 개선명령 제도 도입 ▲시장지배적 지위 추정요건 완화, 소비자이익 저해행위를 판단함에 있어 ‘현저성 요건 완화’ 등 시장지배적 남용행위 규제 강화를 제안했다. 

◇재벌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규제 개혁=순환출자를 통해 보유지분 이상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사회적 타협책으로 제시된게 지주회사제다. 그런데 재벌기업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지주사의 부채비율 및 자사주 의무보유비율 완화, 손자·증손회사 인정 등 지주회사 규제를 무력화시켰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지주회사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과거 순환출자 시대보다 재벌그룹은 더 많은 계열사를 보유하게 됐고, 재벌그룹으로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심화됐다.  

지주회사 껍데기만 걸친 재벌기업집단을 규율하고,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서 김 변호사는 ▲지주회사 부채비율 및 자회사 주식보유비율 규제 강화, 기존 계열사는 손(孫)회사까지(신규 계열사는 자회사만) 허용 등 지주회사 행위규제 정비 ▲공익재단을 통한 계열사 지배행위 규제 ▲기업집단내 일감몰아주기 규제 정비 ▲기업집단 구분과 적용규제 정비 등을 제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 김남근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의 공정거래법 전면개정 논의에서는 시대적 과제인 ‘재벌개혁’, ‘갑을(甲乙)개혁’, ‘공정행정개혁’의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불공정행위의 규율에 대한 개혁=불공정행위 근절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비해 불공정행위 감독과 처벌을 할 수 있는 행정력 비중이 크지 않다. 또 불공정행위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의 피해구제가 행정의 중심목표에서 벗어나 있다는게 김 변호사의 지적이다. 이외 불공정행위의 성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방법에 대한 시각차이가 큰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에 16개가 넘는 많은 불공정행위를 그 성격과 유형, 심사방법에 따라 구분하고, 그에 맞는 심사와 처벌의 수준을 정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불공정행위 유형의 구분과 공정경쟁 저해성 적용범위 개선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고 부당성과 정당성 입증책임 분배 문제의 개선 ▲소위 ‘갑질’이라고 하는 거래상 지위남용행위에 대한 이론과 현실의 상당한 괴리의 극복 ▲형사처벌 조항의 정비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절차법제와 행정과정의 개혁=김 변호사는 공정위의 행정적 감독만으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를 제재하거나 위협적 효과를 거두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해구제뿐만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한 제재적 기능을 가지도록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 제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민사·행정·형사 3측면의 종합적인 피해구제와 감독체계의 정비 필요성을 강조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사인의 금지청구권 도입 ▲조사와 심의 절차의 제도 개선 ▲‘동의의결’ 이행감독제도 도입 ▲형사처벌과 전속고발제의 정비 ▲감독기구 체계의 정비 등을 개선안으로 제시했다.

“경제민주화 실현 방향에서 공정위 위상과 역할도 달라야”

김남근 변호사는 “피해신고 사건의 처리지연이나 부실조사 시비가 제기될 때마다 공정위는 피해구제기관이 아니고 경쟁정책기관이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며 “그러나 불공정행위가 만연하고 이에 대한 피해신고가 봇물처럼 공정위에 접수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구제기관이 아니라는 입장이 올바른 관점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 제119조에 나와 있는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이념을 실현시켜 나가는 방향에서 공정위 위상과 역할도 달리 부여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이 지금까지 논의된 여러 내용을 담아내는 것은 물론, 시대적 과제들을 담아 새로운 공정경쟁 행정방향을 정립해 나가기 위한 논의과정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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