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7월29일까지 ‘이성자: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전시가 진행 중이다. 본 전시는 이성자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전시로, 한 미술가의 전체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귀한 자리다. 이성자는 1951년 한국전쟁 중 도불해 프랑스에서 미술교육을 받아 미술가가 됐다.

◇이성자 미술 바라보기=그는 추상과 구상을 모두 학습한 후 추상미술의 화법으로 자신의 그림세계를 개척해 나갔다. 이는 시기적으로 한국 미술계에서 추상미술이 알려진 시기보다 앞서 있다. 이성자는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을 했으며, 그 결과는 지속적으로 변화한 그의 화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성자는 유화에서 판화로 또 유화와 판화의 혼합 구성으로 선보이기도 하고, 추상과 구상이 한 화면에 등장하기도 하며, 화법은 지속적인 변화를 모색한다. 이렇게 변화하는 화법을 주도하는 이성자의 사상은 자신의 상황을 늘 양가적으로 설정하고 있음에서 비롯된다.

미술평론가 유준상은 이성자가 자신은 공간의 원근법이 아닌 시간과 의식의 원근법으로 자신의 내부를 성찰하며 발전했다고 했다. 따라서 이성자가 지닌 양가성은 서양에서 살아가는 동양인으로서, 또 여자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과거에 대한 회상을 기반으로 형성됐고 발전된 작가만의 사유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사유법은 초기 유화작업에서 나아가 회화와 판화의 혼종적 작업이 됐고 이밖에도 병풍, 깃발, 조형물 등으로 변주돼 다양한 미술의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상이 함축된 그만의 양가성을 표현한 음양기호는 화면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의 음양기호는 목판화를 시작하며 화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의 형태를 본 따 작업실을 건축했고, 후기 우주 작업까지 지속적으로 변주하며 등장한다.

‘이성자: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전시장 전경<사진=국립현대미술관>

그의 음양은 한국과 프랑스를 대척점으로 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대척점에 위치하는 것들은 서로 싸우거나 고뇌하는 것이 아닌 평화롭게 변주하며 조화를 꾀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작품 연작 중 하나인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에서는 그의 작품세계가 자유롭게 펼쳐져 있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은 비행기에서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펼쳐진 풍경들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한 작품들이다.

여기서 자신만의 조형기호인 ‘음과 양’의 조각들은 산과 하늘의 배경 위에 오색 패턴을 지니고 다양한 변주를 보인다. 그 배경은 이성자가 비행기에서 본 산과 하늘의 풍경이다. 또한 추상과 구상이 공존하기 시작하며, 목판화와 유화의 기법을 혼합해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에도 정착하지 않고 프랑스에도 완벽히 정착하지 않은 이방인으로서의 생활 중 비행기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창조의 원동력이 돼 펼쳐진 것이다.

이성자가 설정한 지구 반대편은 한국과 프랑스이다. 그 사이 극지를 지나며, 바라본 바깥 풍경과 시간들 그리고 작가 자신의 모습은 음양의 기호가 돼 여러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비행기 안의 시공간에서 자신이 정한 대척점을 오가는 동안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반대편=프랑스가 지리적으로 한국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국가는 아니다. 그러나 이성자와 같은 예술적 표현을 빌려 보자면, 오늘날 한국의 반대편은 지척에 두고도 이념의 차이로 오가지 못하는 북한이 그 위치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분단 이후 1998년 정주영이 소떼를 몰고 방북했고, 이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며 통일이 막연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금강산 관광을 통해 일반인들도 북한에 다녀올 수 있었고, 개성공단에서 일도 할 수 있었다. 이후 남북관계는 점차 단절됐고, 북한의 핵은 날이 갈수록 한반도를 초긴장 상태로 만들었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월4, 90’, 1990, 캔버스에 아크릴릭, 150cm×150cm<사진=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소장>

그러나 대통령이 바뀌고, 2018년 남과 북의 관계는 해빙의 절차를 밟고 있다. 남북관계는 아주 예민하고 섬세한 문제라 급작스레 변화할 여지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올림픽을 계기로 한 예술단의 교류를 비롯해, 하반기 광주에서 열리는 ‘광주국제비엔날레’에는 북한 미술가들의 참여도 기획돼 있다.

요 근래 북한의 태도는 위협을 멈추고, 점차 상호간에 마음을 여는 듯 보인다. 실제로 북한 내부의 상황도 많이 변화했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결과 지난해 GDP가 3.9% 성장했다고도 한다. 이와 같은 남북한 관계의 변화와 교류의 점진적 확대는 서로간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반대편으로 가는 길=남한과 북한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통일이라는 멀고도 큰 그림을 그리곤 한다. 그러나 양측은 서로 대척된 지점에 서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지난 세월은 더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남과 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은 거의 한 세대를 넘어가버리기도 했다. 남한의 입장에서 북한을 설명하기에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인종의 다른 국가라고 하는 것이 훨씬 젊은 세대들에게 와 닿을 것이다. 냉전의 마지막 산물로 남다시피 한 한반도를 두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제시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다양하다.

이 이념의 대척지에 서 있는 우리에게 이성자의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연작은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대척점을 이동하는 이성자의 시선은 황홀하고 또 평화로웠다. 땅과 하늘 사이에서 유영하는 이성자의 음양기호들을 바라보면, 어느 곳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전쟁 후 남북관계의 서막인, 1001마리의 소떼와 함께 방북한 정주영을 보고 기 소르망은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나 반대편으로 가는 길이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각종 준비물을 챙겨야 할 것이다. 훼방꾼도 나타날 수 있고 체력이 부족해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서로 대척점에 서서 자유롭게 왕래할수 없는 관계이지만, 남과 북 모두의 입장을 보았을 때 현 상태의 지속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 결말에 연연하지 않고 기존의 형식과 틀을 벗어난 자유롭고 평화로운 길을 개척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ㅣ 종전, 비핵화, 평화, 번영, 통일…남북 함께 걷는다
• 관련기사 ㅣ 드디어 만난 남북정상…남과 북측 땅을 오가다
• 관련기사 ㅣ 남북정상회담 성공기원…시민도 함께 한다
• 관련기사 ㅣ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