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기아차는 납품계약시 현재 임률을 1만8000원에서 1만9332원으로 7.4% 인상하고, 납품계약에 따른 통행세(8~15% 추정) 근절대책을 마련한다. 또 1차협력업체와 그 이하 하도급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후려치기 근절대책을 마련하고, 최초 납품계약시 적정한 납품단가를 보장한다.’ 

이 요구안은 현대·기아차 협력업체가 집단으로 모여 원청인 현대·기아차에 제출한게 아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가 최근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확정하고, 현대·기아차에 제출할 2018년 단체협약안에 담긴 내용이다. 현대·기아차지부가 조합원의 이해·요구와는 무관하게, 원하청간 불공정한 거래를 개선하고자 현대·기아차 협력업체의 정당한 요구를 대신 주장했다. 

반면 350만 중소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법정단체, 중소기업중앙회가 회원사인 현대·기아차 협력업체를 위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중기중앙회는 지난 3월 중소기업 1650곳을 대상으로 한 ‘2019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중소기업 의견조사’를 근거로 중소기업 절반(48.2%)은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을 원한다고 2일 밝혔다. 중소기업 10곳중 7곳 이상(73.9%)이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운 상황이란 이유를 들었다. 또 중기중앙회는 ‘최저임금 1만원 적정시기’에 대한 조사결과 ‘2022년(23.3%)’, ‘2024년(23.2%)’, ‘2030년 이후(18.2%)’ 순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조사결과 ‘2020년’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15.4%에 불과했다. 

중기중앙회의 이날 발표는 2019년 최저임금 협상을 앞두고,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호소함으로써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또 최근 진행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협의 과정에서, ‘상여금, 숙식비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 등 사용자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다. 문제는 중기중앙회의 이런 전략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역행하는 차원을 넘어, 장시간·저임금 노동체제를 고착화시키려는 최악의 선택이란 점이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체제를 보다 공고히 할 요량이라면, 중기중앙회는 더 이상 ‘중소기업에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한다. 장시간·저임금 사업장에 청년취업을 고대하면서, 인건비나 뜯어먹자는 사용자를 위해 청춘을 바치라고 강요하는건 죄악이다. 

청년취업자에게 헌신과 창발성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적정임금을 보장하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럼에도 중기중앙회는 수십년이상 반복했던 처방,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깎자는 것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중기중앙회의 주장은 그 의도와 달리 지불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영혁신 자체를 봉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중소기업의 경영여건 개선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을 찾아야지, 마른 수건을 쥐어짜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럴거면 차라리 중기중앙회 인력을 동원해,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 사무실 앞에서 ‘2018년 단체협약안’ 관철을 지지하는 집회를 하는게 낫다. 그것도 모자라면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 자택 앞에 모여, 노조 요구안을 수용하라고 촉구하는게 보다 효과적인 전략이란 말이다. 

하도급업체 임률 7.4% 인상이면 대만족까진 아니더라도 낮지 않은 수준이다. 게다가 관행화된 통행세 근절대책 및 적정한 납품단가 보장책을 마련한다는데,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와 중기중앙회가 함께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현대·기아차 경영을 일정 정도 들여다 보는 노조와 협력업체의 애로사항을 꿰뚫고 있는 중기중앙회가 협업한다면, 적정 수준의 납품단가 보장책을 만드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행여 ‘사용자단체’인 중기중앙회가 현대·기아차지부의 ‘귀족노조’ 놀이에 부화뇌동, 현대·기아차 경영에 부담을 준다는 쓸데없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동차산업의 하도급 거래실태와 임금격차 현황’에 따르면, 최근 7년간 현대차와 현대차 계열사의 영업이익률은 6~9%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현대차 전속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6년엔 3%수준까지 떨어졌다. 양자의 영업이익률 수치가 거꾸로 돼도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해소가 요원한데, 현실은 부익부 빈익빈만 가속화되고 있다.  

귀족노조 조합원들의 임금이 너무 높아서 현대·기아차가 협력업체에 줄 돈이 부족하단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현대차의 평균연봉은 8만달러 수준으로 미국에서 임금이 가장 낮은 오리온타운십공장(10만달러)보다 낮다. 미국에서도 임금이 높은 페어팩스공장의 평균연봉은 14만달러가 넘었고, 햄트랙공장과 로즈타운공장도 12만달러 이상이다. 

중기중앙회가 지불여력이 풍족한 현대·기아차를 돌아볼 처지가 아니다. 이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자동차·트레일러 업종 임금격차는 300인이상 사업장대비 100~299인 사업장은 51.5%, 30~39인 사업장은 40% 수준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의 임금이 대기업의 절반도 안되는 이유에 대해 이 선임연구위원은 원청이 협력업체의 사용설비, 1일 생산량, 노무비 임률 및 인원까지 통제 관리해 원가를 결정하는 ‘원가계산서의 폐해’라고 주장했다. 

중기중앙회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현대·기아차에 ‘원가계산서’ 폐기와 함께 적정한 납품단가 보장을 촉구하는 것이다. 수직·종속적 원하청 관계에서 협상력이 부족한 회원사들을 대신해 현대·기아차와 거래조건을 협상하고, 그 결과 대기업 독식의 분배구조를 바꾸려는 의지와 가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수준의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우수한 인재의 중소기업 기피현상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혁신을 통한 중소기업의 성장 또한 지체될 것이고, 중기중앙회의 토대인 중소기업 자체가 소멸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대중소기업간 불공정한 거래가 이미 관행화된 특별한 상황이다.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포함한 중기중앙회의 특별한 결단과 함께 즉각적이고 과감한 조치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