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 미술평론가, 디지털문화정책학

LOVE는 뉴욕뿐만 아니라 필라델피아를 비롯해 미국 곳곳에 설치돼 있고,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용인(아모레퍼시픽 미술관)과 오산(아모레퍼시픽 공장)에 이 작품이 설치돼 있다. 뉴욕을 세차례나 가봤음에도, 필라델피아를 다섯차례나 가봤음에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음에도 인디애나의 LOVE 작품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 다음에는 LOVE가 있는 곳에 방문하게 되면 꼭 가보리라.

LOVE 작품은 작은 크리스마스카드에서 시작됐다.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로버트 인디애나에게 크리스마스카드 디자인을 의뢰했고, 인디애나는 그 디자인으로 LOVE를 제작하게 됐다.

처음에 그는 O자를 얌전하게 세워서 디자인했지만, 별로 재미없어 보여 살짝 기울여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그로 인해 인디애나만의 특유의 LOVE 글자가 완성됐다. 당시에 붉은색, 파란색, 초록색의 세 가지 색깔로 구성된 LOVE 카드는 엄청나게 인기를 끌게 되었고, 그 카드의 성공에 힘입어 1966년 입체작품의 LOVE를 제작해 뉴욕 스테이블 갤러리(Stable Gallery)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그 후 LOVE는 1970년에 미국 내 우표 이미지로 사용됐고 포스터, 티셔츠, 머그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면서 작품을 넘어서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LOVE’, 뉴욕 맨해튼 6번가 55번거리에 설치.<출처=commons.wikimedia.org(좌), www.earthgrow.us(우)>

그렇다면 이 거부할 수 없는 네 글자 L·O·V·E를 그가 크리스마스카드 디자인으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로버트 인디애나의 우울했던 어린 시절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생모에게 버려져서 갓난아이 때 입양됐다. 하지만 양부모의 관계는 나빴고, 결국 인디애나가 8살 때 양부모는 이혼했다. 그로 인해 그는 힘들어했고, 애정결핍 증상을 겪는다.

그의 작품 중 ‘어머니와 아버지(Mother and Father, 1963~66)’라는 두 캔버스가 한 세트를 이루는 회화작업이 있는데, 이 작업에서 인디애나의 양부모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이 작업에서 한쪽에는 어머니라고 볼 수 있는 여인이 상반신이 벗겨진 매춘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다른 쪽에는 아버지라고 볼 수 있는 남성이 떠나는 자동차 앞에 서 있다. 정유회사 매니저로 일하던 아버지는 그가 17살 될 때까지 21번이나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에게 아버지는 늘 떠나는 남자였고, 어머니는 불운한 여인이었다. 이렇듯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카드를 LOVE로 만들었던 것은 애정결핍에 시달렸던 작가가 세상을 향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담겨있던 것은 아닐까? 그 거부할 수 없는 LOVE를 모든 사람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인디애나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EAT’를 들 수 있다. 그에게 ‘먹다’와 ‘사랑’의 의미는 같다. 그를 키워준 어머니는 그의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먹다(EAT)’였다. 

그가 알래스카에서 공군으로 복무하고 있었을 때, 어머니가 암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 때 어머니는 “밥 먹었니?”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5분 후 사망한다. 어머니에게 ‘먹다(EAT)’와 또 다른 ‘사랑(LOVE)’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먹다’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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