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는 자신이 판매하는 기계주물의 제조를 위해 주석원료를 인도네시아 B사로부터 수입하기 위해 주거래은행 D에게 신용장 개설을 의뢰했다.

A사의 신용장을 개설한 주거래은행 D(개설은행)는 수익자인 B사에 신용장 개설 완료를 통지했다. 이후 B사는 주석원료 선적사실을 A사에 통지하고, 자신의 주거래은행 C(매입은행)에게 신용장 조건에 일치하는 일체 서류를 제시하고 매입을 의뢰한 후 그 대금(미화 78만달러)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B사는 이 사건 구매계약 목적물을 선적하지 않았으며, 거짓으로 선적서류를 작성해 매입은행 C에게 매입을 의뢰했다. 또 A사는 B사가 선적하지 않았음을 운송인의 도움으로 알 수 있었으며, 매입은행 C에게 그 사실을 통지했기에, C 역시 B사가 제시한 선적서류 내용이 허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매입은행 C는 허위작성된 선적서류를 포함한 서류 일체를 B사로부터 인수하고, 신용장대금을 지급한 후 개설은행 D에게 신용장대금지급을 청구했다. 

개설은행 D는 매입은행 C의 신용장대금 상환청구에 응해야 하는가? 또 만일 거부할 수 있다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는가?

  

화환신용장에 의한 거래는 본질적으로 서류에 의한 거래로 상품에 의한 거래가 아니다. 따라서 은행은 상당한 주의로써 그 선적서류가 문면상 신용장의 조건과 일치하는지 여부만 확인하면 되고, 그 선적서류에 대한 실질적인 심사의무까지 부담하지 않는다. 

신용장거래의 이같은 구조로 신용장개설의뢰인은 수익자의 선적서류 위조·변조 또는 허위작성 등 악의에 기한 사기행위에 노출돼, 정상적인 물품을 확보하지 못하고 신용장대금만 지급할 위험성이 높다.

은행은 서류를 취급하는 것이며 그 서류와 관련될 수 있는 물품, 용역 또는 이행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신용장통일규칙 제5조).

제시된 서류가 신용장의 조건에 엄격히 일치하더라도, 그 것이 위조 또는 사기로 작성됐음이 밝혀지면 당해신용장의 대금지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사법상의 이론으로 ‘사기거래배제의 법칙(Fraud Rule)’이라 부른다. 

사기거래배제의 법칙은 신용장통일규칙에 명문규정을 두지 않은 이유로, 국제적인 판례로 생성됐다.     

우리 판례도 신용장의 대원칙인 추상성을 인정하지만 예외적인 경우에 대원칙을 후퇴시키는 입장이다. 

   

개설은행은 상당한 주의로써 그 선적서류가 문면상 신용장의 조건과 일치하는지 여부만 확인하면 되고, 그 선적서류에 대한 실질적 심사의무를 부담하지는 아니한다(대법원 1993.12.24. 선고 93다15632 판결). 

그러나 선적서류가 위조된 경우 개설은행이 상환의무를 이행할 당시 그 서류가 위조된 문서임을 알고 있었거나 위조된 문서라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또한 매입은행도 위조행위의 당사자로서 관련되어 있거나 매입 당시 서류가 위조된 문서임을 알고 있었거나 또는 위조된 문서라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경우에는 은행은 더 이상 이른바 신용장의 독립·추상성의 원칙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신의성실의 원칙상 개설은행은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거절함이 마땅하고, 매입은행도 개설은행에게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구할 권리가 없으며, 설사 개설은행이 매입은행에게 신용장대금을 지급하였다고 하더라도 개설의뢰인 또는 개설의뢰인의 보증인에 대하여 신용장대금의 결제를 청구할 수 없다(대법원 1997.8.29. 선고 96다43713 판결).

이 사건 매입은행 C와 개설은행 D는 B가 제출한 선적서류의 위조 내지 허위작성 사실을 알 수 있었기에 ①개설은행이 상환의무를 이행할 당시 그 서류가 위조된 문서임을 알고 있었거나 위조된 문서라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또한 ②매입은행도 위조행위의 당사자로서 관련되어 있거나 매입 당시 서류가 위조된 문서임을 알고 있었거나 또는 위조된 문서라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면, 신용장개설의뢰인은 그 요건 등을 객관적으로 구비하여 채무자(신용장개설은행) 주소지의 지방법원에 신용장대금지급금지 가처분을 구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A사는 목적물이 선적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한국, 현지 F/W 및 선사 관계자들의 사실확인증 등의 자료를 준비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속하게 서류를 접수·진행해 신용장대금지급금지 가처분결정을 받았다. 즉 A사는 신용장대금지급의 위험에서 벗어난 것이다. 개설은행 D는 매입은행 C에게 상환할 필요가 없다. 

신용장대금지급금지 가처분제도는 신용장엄격일치의 원칙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서 수익자측이 선적한 목적물의 품질, 수량 등이 매매계약과 다른 경우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선적 당시, 화물의 상태와 선적과정 등을 통제할 수 있는 대책을 갖추는게 실효적인 예방책이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