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자영업과 1인 자영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자영업자의 장기간 근로가 심각한 현실을 반영, 소상인의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회적 안전망을 두텁게 하고, 소상인의 사업영역 보호를 위해 공정한 경제질서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8일 개최한 ‘소상인 워라밸 향상을 위한 정책포럼’에서는 워라밸 논의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상공인의 워라밸을 촉진할 정책대안들이 제시됐다.  

서울여자대학교 노용환 교수는 “부실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생계형 자영업이 많은 우리나라 소상인 특성상 일과 삶의 균형은 매우 열악한게 현실이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안전망 구축이 절실하지만, 소상인은 근로자가 아닌 사업자라는 이유로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임대료상한제와 같은 젠트리피케이션 대책, 온오프라인 카드수수료 인하,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폐업시 재출발 지원 등 넒은 차원에서 촘촘하게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상인, 하루평균 11시간 일하고 한달 평균 3일 쉰다

워라밸이 최근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근로자를 위해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근로시간 단축도 활발히 논의된다. 그러나 생계형 자영업자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그간 소상공인 워라밸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결과조차 찾기 어려웠다. 과연 소상공인의 일과 삶의 현실은 어떠할까.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1월 고용인 5인미만 소상인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한민국 소상인 일과 삶의 균형 조사’에 따르면 소상인 사업주는 주6일 하루 평균 10.9시간 영업하고 한달 평균 3일 휴무했다. 여가 등 개인시간은 거의 없었다. 

100점기준으로 소상인이 느끼는 사업의 노동강도 역시 전체 평균 65.6점으로 높았다. 특히 음식점업은 70.7점, 자동차·부품판매업은 68점으로 노동강도가 더욱 높았다.

조사결과 소상인이 느끼는 일과 삶의 균형을 위협하는 요소 1위는 ‘내부불안 등 경기침체’가 72.9%를 차지했고, ‘불안정한 수입으로 인한 경제적 여유부족(60.34%)’이 두번째였다. ‘오랜 노동시간’이라고 응답한 비중도 37.1%였다.

소상인의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정부지원으로 ‘사회안전망 확대’라는 응답이 48.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업영역 보호(43.9%)’, ‘사업활성화 지원(38.1%)’, ‘노동시간 단축지원(28.7%)’이 뒤를 이었다. 특히 소매업에선 ‘사업영역 보호’라는 응답이 가장 많아, 대형마트·복합쇼핑몰의 골목상권 침탈을 제지하기 위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안전망 확보, 자영업자의 4대보험 가입 확대해야

한국노동연구원 박찬임 선임연구위원은 “근로자에게 보장된 4대보험 등 사회적 안정장치가 소상인에게는 사각지대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의 경우 근로자로 가입하면, 고용주와 근로자가 5:5로 부담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지만 자영업자는 100%를 부담해야 한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고용보험과 산재보험도 자영업자의 가입이 극히 제한돼 있다. 고용보험은 자영업자가 임의로 가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가입자는 1만7000여명, 실업급여 수급자는 1000명으로 실효성이 적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자영업자는 폐업시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영업자가 폐업 후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폐업 전 6개월간 매출 감소가 확인돼야 하고, 비자발적 폐업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등 실업인정 절차가 까다롭다. 이에 박찬임 선임연구위원은 “실업인정기준을 완화하는 등 자영업자에 대한 실업급여제도를 보다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재보험 또한 자영업자가 임의로 가입이 가능하지만 현재 가입자는 1만9000여명, 수혜자는 498명으로 참여가 저조하다. 특히 우리나라 자영업은 1인 자영업자가 대다수지만, 이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하려면 위험직종인 경우에만 가능한다. 이에따라 1인 사업자 전체로 산재보험 가입대상을 확대하는게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생활 균형 정책, ‘근로자’에서 ‘모든 일하는 자’로 확대 적용해야 

일·생활 균형 정책은 ‘근로자’라는 법적 지위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장시간노동과 일·생활 균형이 필요한 ‘모든 일하는 자’에 대한 보편적인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노동연구원 김근주 부연구위원은 “현재 사회적으로 논의 중인 근로시간 단축에 소상인에 대한 고려는 빠져있다”며 “근로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소상인과 같은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근로자화 또는 유사한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소상인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보험 또는 사회서비스에 대한 지원확대 방안 모색도 제안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8일 개최한 ‘소상인 워라밸 향상을 위한 정책포럼’에서는 워라밸 논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소상공인에게 필요한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중기이코노미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임원배 수퍼마켓연합회 회장은 “자영업자는 노동시장에서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생계형 창업으로 자영업자 시장에 밀려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슈퍼마켓업계만 해도 대표자 부부가 1년 365일 하루에 17시간씩 일을 하지만, 부부가 고용인이 아니기 때문에 소득금액이 명확치 않고, 이에 따른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등의 비용도 일반 근로자에 비해 너무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장 하루 문을 닫으면 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에 문화생활이나 인적교류 등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이동주 사무총장은 “중기중앙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자영업자들이 요구하는 정부지원은 사회안전망 확대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사업영역 보호”라며 이는 “대기업의 시장침탈 등으로 자영업시장 자체가 보호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워라밸에 앞서 생존권을 더 시급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너진 공정경쟁 시장구도를 바로잡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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