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그는 과거와 현재, 진본과 모조, 가상과 실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역사성과 동시대성을 잇는 문화 형성과정을 파헤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라릭은 역사적 고대의 조각에서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터넷상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한편의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모방과 반복, 참조와 인용이 어떻게 이미지를 역사화하는지 드러냈다.

올리버 라릭의 ‘도상(Icon-Utrecht)’과 ‘포토플라스틱(Photoplastik)’

올리버 라릭, ‘Photoplastik’ 전시 설치 전경, 2016<출처=www.we-find-wildness.com>

그랬던 라릭이 근래에 와서 입체 작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3D 스캐닝-프린팅 기술의 상용화와 큰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2009년에 제작한 ‘도상(Icon-Utrecht)’의 경우, 위트레흐트 성당(네덜란드)의 파괴된 중세 도상을 3D 스캐닝-프린팅 기술을 통해 같은 형태와 크기의 여러 개의 폴리우레탄 복제 실물을 선보였다. 그는 중세 조각(물질) → 3D 데이터(비물질) → 3D 프린팅(물질) 실물의 메커니즘을 작업에 도입함으로써 창조성, 원본성이 어떻게 디지털 시대에 변주되는지 보여주었다.

이러한 물질화된 ‘복사-붙여넣기’는 점점 더 대형화되는 형태로 진화되고 있으며, 더욱더 디지털 가상과 물리적 현실의 상호 호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전되는 모습을 보인다.

2016년에 비엔나의 ‘빈분리파 미술관(Secession)’에서 선보인 ‘포토플라스틱(Photoplastik)’전시는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는 유명한 박물관과 협력해 고전 조각 작품들을 3D 데이터화하고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3D 예술작품보관소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여기서 작업한 3D 데이터를 활용해서 전시 작품을 제작했다.

올리버 라릭, ‘Panoramafreiheit’ 설치 장면, 2017<출처=www.metropictures.com>

그는 이 전시에서 폴리우레탄과 석고 조형이 섞여 있는 형태의 조각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감상자에게 원본성과 현재 기술의 복제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또한, 전시에서 선보인 조각작품을 제작하는데 사용했던 3D 데이터를 공개 도메인(threedscans.com)에서 누구나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원본이 되는 고전 조각 작품을 작가와 같은 특정인만이 아닌, 누구나 실물로 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디지털 공간의 ‘복제-붙여넣기’가 현실공간에서도 상호호환되는 양태를 드러나게 했다.

이러한 디지털의 물질화는 전시할 현실공간을 필요로 하게 됐다. 인터넷을 떠돌며 유동적으로 변하던 디지털 이미지가 이제 현실공간에 고정된 형태의 물질이 되어 자신의 자리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론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은 디지털이 전통적인 미술 형식에 스며들고 있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은 고전적 형식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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