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도입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반쪽짜리가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30일 기금운용위원회를 개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안을 의결한다. 앞서 26일 기금운용위원회는 스튜어드십 코드 정부안을 상정, 의결을 시도했으나 노동계·시민사회 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의결일정을 연기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정부안은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부터 우선 도입하고, 경영참여 주주권은 제반여건 구비후 도입을 검토하는 안이다. 이러한 정부안에 대해 노동계·시민사회 위원들은 사외이사 추천 등 경영참여가 빠진 스튜어드십 코드는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계·시민사회의 반대에도 30일 기금운영위원회가 반쪽짜리 스튜어드십 코드안 도입을 의결한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20명 위원중 노동계·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위원은 5명으로 정부안 의결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자금주인 국민이익을 위해 수탁자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행동지침이다. 투자한 회사가 잘 굴러가는지 감시함으로써 경영건전성과 더불어 경영수익성을 관리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에서 박영석 서강대학교 교수가 패널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가 집사(steward)처럼 돈을 맡긴 국민 이익을 위해 책임을 다하도록 한 지침이다.<사진=뉴시스>

참여연대는 23일 논평을 통해 “각종 갑질 및 횡령·배임 등 혐의와 관련해 수차례 피소되거나 고발 및 검찰 구속영장이 청구된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경우, 경영진이자 대표이사로서 실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음에도 견제장치는 전무한 상황이다. 기업마다 감시·견제를 위한 이사회가 존재하지만 사실상 ‘거수기’에 불과하다”며, “소비자·종업원·전문가 대표 등 총수일가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인, 실제주주를 대표해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이사선출을 위해서는 경영참여가 국민연금 주주권행사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맡긴 돈을 운용하기 때문에 주로 안정적인 대기업에 투자한다. 대기업 경영진의 의사결정은 국가에 미치는 경제·사회적 영향력도 크다. 

대한항공 조현민 전 부사장이 저지른 물벼락 갑질이 진에어 면허 취소처분 여부까지 거론되는게 작금의 상황이다. 갑질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국국적을 가진 조현민 부사장이 국적항공사인 진에어 등기임원에 오른 사실이 밝혀졌다. 현행법상 국적항공사에 외국인이 등기임원으로 재직하면 면허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국토부는 30일부터 다음달까지 3회에 걸쳐 진에어 관계자들을 불러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진에어 면허취소가 현실화되면, 직원들은 직장을 잃고 투자자 또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된다. 대기업은 장사가 잘되든 안 되든 사장 혼자 책임지는 동네 구멍가게가 아니란 얘기다.

대한항공·진에어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곤 눈꼽만큼도 갖지 못한 조씨 일가의 품성임에 틀림없다. 항공산업에 대한 인허가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국토부의 잘못된 관행도 사태를 키운 주범중 하나다. 이외 대한항공·진에어 사태를 키운 많은 원인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 경영진을 감시·감독할 수 있는 기관이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독립성을 가진 충실한 집사(steward)가 조씨 일가를 견제할 수 있었다면, 대한항공·진에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반쪽자리가 아닌 온전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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