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20여일 이어지고 있다. 낮에도 문제지만, 밤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열대아의 연속이다. 전국 어디도 다 똑같다. 더위에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쪽방촌에서는 낡은 선풍기 한 대로 더위에 싸우며 지낸다는 소식도 들린다. 없는 사람들은 겨울보다야 여름이 지내기가 수월하다지만 올 여름 폭염은 혹한의 추위만큼 무섭다. 비단 쪽방촌 사람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에어컨이 집에 있어도 전기요금이 얼마나 나올까 걱정스러워 선풍기를 돌려야 하는 가정도 부지기수다.

해마다 연중행사 치르듯 하는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폭염과 더불어 다시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누진제를 폐지해 달라는 청원이 줄을 잇는다. 정치권에서도 특별재난 수준의 폭염기간에는 한시적으로 누진제를 폐지하자는 법안 발의가 준비되고 있다.

징벌적인 누진제가 한 차례 완화되기는 했다. 2016년 12월부터 6단계인 누진단계가 3단계로 줄어들었다. 가계부담이 일정 정도 줄어들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올 여름처럼 폭염이 이어질 때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는 역부족이다.

또 산업용 전기요금과 주택용 전기요금의 형평성은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전기 생산량의 대부분을 제철소 등 대규모 사업장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사용하면서 전체 전력 중 13%밖에 되지 않는 주택용 전기를, 전력예비율을 떨어뜨리는 주범처럼 취급하는 왜곡 또한 여전하다.

서울과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폭염속에서도 전기요금이 얼마나 나올까 걱정돼, 에어컨이 집에 있어도 선풍기를 돌려야 하는 가정이 부지기수다. 사진은 지난 31일 서울 광화문광장 분수대 모습.<사진=뉴시스>

2011년 9월15일 전국 162만곳이 동시에 정전된 블랙아웃 사태의 가장 큰 잘못은 수요를 예측하지 못한 한국전력에 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블랫아웃의 책임을 가정용 전기사용으로 지목해, 전기요금을 몇 차례나 인상하고 발전소 건설 허가를 남발했다. 올 여름 폭염이 이어지자, 일부 언론은 블랙아웃 공포 분위기를 띄우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블랙아웃이 왜 일어나는지, 해결점은 무엇인지, 고민도 없는 언론 보도, 참 한심스럽다.

블랙아웃의 공포를 없애고 가정용 전기요금을 낮추기 위해서는 전기 먹는 공룡, 대규모 사업장의 전기공급체계를 바로잡는 것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선진국 많은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대규모 사업장의 자가 발전시스템 도입도 검토할 때가 됐다. 당진 현대제철소 사용전기가 부산 전체의 주택용 전기보다 56%나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제철소, 반도체 공장, 조선소, 자동차 공장만 자체 발전소를 가진다면 지금처럼 블랙아웃 때문에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할 필요도, 주택용 전기요금 사용량을 억제하기 위해 누진제를 적용할 필요도 없다.

이윤에 밝은 기업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전기를 만들어 쓰는 것보다 사서 쓰는 것이 비용절감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한전의 전기 매입가격인 전력거래소 7월30일 SMP 평균가격이 kWh당 87.53원이다. 그러나 산업용 전기의 경우,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는 kWh당 53.7원[산업용(을) 고압C 선택Ⅲ 기준]을 부과한다. 하루에 10시간을 kWh당 33.83원 손해보고 팔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굳이 자가발전을 할 이유도 없다.

한전이 대기업에 손해보고 파는 전기, 가정용 누진제에서 충당한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는 대기업의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와 같이 가야 한다. 또 여력 있는 대기업은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충당할 수 있도록 법 제도의 정비가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 한전이, 대기업에 원가 이하로 전기를 퍼주고 국민들에게 청구서를 내미는 불합리를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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