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판매가능한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약사계는 부작용 우려를 이유로 품목확대를 반대하는 반면, 편의점업계와 시민사회는 국민 편의증진이라는 반대논리로 맞섰다. 

8일 보건복지부는 ‘제6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개최해, 품목조정 방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제산제(위장약)와 지사제(설사약)를 추가하는 방안에는 공감대를 얻었으나, 개별 품목선정과 안전성 기준 적합 여부 등은 제7차 회의에서 검토하기로 했다.

이날 지정심의위원회에는 시민단체, 편의점업계, 약학회, 의학회, 공공보건기관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총 10명의 위원이 참여했다.

이날 합의가 무산된 이유중 하나는 안전상비의약품인 ‘타이레놀 500mg’을 약사계가 안전상비의약품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초 위원회는 제산제와 지사제를 각각 하나씩 추가하는 대신 소비자가 많이 찾지 않는 소화제 2종을 제외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약사계가 타이레놀 500mg도 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약사계는 고용량 타이레놀은 오·남용시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안전상비의약품은 오·남용 우려가 적어 환자가 약사의 도움없이 스스로 판단해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편의점도 판매자로 등록하면 판매가 가능하다. 현재 안전상비의약품으로 지정된 품목은 해열진통제 5개, 감기약 2개, 소화제 4개, 파스 2개 등 총 13개다.

<자료=보건복지부>

대한약사회는 지난달 29일 궐기대회를 열어 안전상비의약품 확대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편의점 판매를 확대하면 부작용으로 사고가 증가할 우려가 있어 국민건강 보호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는 안전상비의약품 확대를 반대하는 약사계를 향해 ‘직역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약사회 궐기대회가 열린 다음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을 통해 “약사회가 국민건강을 위한다면 국민 의약품 접근성과 편의성을 가로막지 말고, 의약품 재분류 등을 위해 나서야 한다”며 “오·남용 우려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 포장에 복약지도를 더욱 크고 쉬운 표현으로 표기해, 국민 누구나 보기 쉽게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약사회가 판매중지를 요구한 타이레놀 500mg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의하면 편의점 상비약 판매액 1, 2위를 다툴만큼 국민이 필요할 때 손쉽게 찾는 의약품”이라며 “해당약품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면 식약처 등 의약품 관리체계에서 판매중지 등에 나서야 한다. 단순히 편의점 판매 품목에서만 제외하라는 주장은 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이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것을 막고 약국에서만 판매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도 상비약 확대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지난 7일 경실련이 발표한 ‘상비약 약국외 판매’ 시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비약 편의점 판매제도와 품목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97.0%, 86.8%에 달했다. 편의점 상비약으로 부작용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응답비율도 93.5%였다.

확대해야 할 상비약 품목으로는 제산제와 지사제가 각각 15.4%로 동률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일명 ‘빨간약’으로 불리는 살균소독약인 포비돈액이 14.0%, 화상연고가 13.2%로 뒤를 이었다.

상비약을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이유로는 ‘공휴일이나 심야시간 등 약국이용이 불가능할 때’라는 비율이 74.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가벼운 증상으로 스스로 상비약 복용으로 치료가 가능할 때’와 ‘편의점이 약국보다 가까울 때’는 각각 15.3%, 7.4%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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