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유행처럼 이러한 용어들이 번지는 것은 지금 우리의 시대가 기존의 디지털시스템을 벗어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런 분위기는 물리적 실체를 가지고 현실의 전시공간에 등장하는 포스트-디지털/인터넷 예술 현상과도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

턴테이블(LP 플레이어)을 통해 음악을 듣던 LP레코드가 디지털시대로 진입하면서 CD로 변하더니, 다시 MP3가 되어 형체가 사라졌고, 인터넷이 일상화되면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그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필름카메라는 촬영이 쉽고 즉시 확인 가능한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과거의 유물이 됐다. 종이책은 전자책이 활성화되면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됐다. 모든 기록이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기기에 기록되면서 노트는 이제 필요 없을 것처럼 이야기됐다.

하지만 반전은 지난 몇 년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다. 근래 LP레코드의 판매가 급속도로 치솟고 있다. 이것은 영국과 미국 등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필름카메라에 대한 향수는 필름카메라의 ‘불편함’을 고스란히 담은 ‘구닥(Gudak)’과 같은 스마트폰 앱을 탄생시켰다.

필름카메라의 감성을 가져온 앱 ‘구닥(Gudak)’<출처=www.cnet.com>

‘구닥’은 필름카메라처럼 필름 한 통(24장)을 모두 찍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며, 마치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인화를 기다리듯이 3일이 지나야 그 때 찍었던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앱에 환호했다. 

그리고 전자책에 의해 사라질 것으로 생각되었던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라인서점 아마존(amazon.com)이나 국내의 유명 온라인서점 알라딘, 예스24 등은 오프라인서점을 내고 있다. 온라인서점이 직접 책을 만져볼 수 있는 현실 서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필기구로 직접 정보를 기록하는 노트의 판매는 늘고 있으며, 손글씨인 캘리그래피(calligraphy)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렇듯 디지털 기반의 사회는 예전의 아날로그 형태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아날로그의 반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런 현상을 아날로그로의 회귀라고 단정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독일의 댄스뮤직 음반회사인 Kontor Records의 ‘Back to Vinyl 캠페인’ 관련 이미지<출처=insight.ottomonitor.com>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실제가 아닌 ‘느낌’을 전해준다는 사실이다. 이 캠페인을 위해 제작된 LP를 들을 때 턴테이블이 굳이 필요치 않다. 턴테이블 모양을 그려놓은 앨범 보호용 포장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려진 포장재의 턴테이블에 LP를 올리고 스마트폰으로 옆에 있는 QR코드를 찍은 후, 그 LP판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으면 음악이 나온다. 이것은 LP앨범을 듣는 듯한 느낌만 줄 뿐이다. 실질적으로 음악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온다. 위장된 아날로그다. 결국 핵심은 디지털이다.

필름카메라의 감성을 가져온 ‘구닥’도 마찬가지다.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의 편리성을 아날로그의 ‘불편함’으로 바꿔놓았지만,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기기에서 작동하는 앱일 뿐이다. 결국 이것도 디지털이다. 근래에 여러 디지털기기에서 디지털펜을 통해 노트처럼 필기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이것도 결국 디지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외에도 소위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것의 대부분이 디지털 메커니즘 위에서 생성된다. 과연 이것을 ‘아날로그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디지털의 역습’은 아닐까?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흡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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