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등 경영여건이 악화된 소상공인들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카드 의무수납제’를 폐지하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카드 의무수납제’를 폐지하면, 영세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이 오히려 커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카드사와 영세 가맹점이 대등한 협상을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부의 개입논리가 사라져 중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카드 의무수납제 폐지 주장의 근거중 하나는 1만원이하 소액결제까지 카드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많아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소비자단체들은 신용카드 사용문화가 정착된 상황에서 의무수납제 폐지는 소비자의 편의를 무시하고, 나아가 카드수수료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고 우려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달 27일 주최한 ‘의무수납제 관점에서의 카드정책 변화과정과 향후 고려사항 토론회’에서 한국금융연구원 구정한 선임연구위원은 “의무수납제를 폐지할 경우 협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맹점의 특성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카드수수료율에 대한 정부개입이 약화되면서 협상력에서 우위에 있는 카드사가 영세 가맹점 수수료율을 높이는게 가능해진다. 의무수납제를 폐지하더라도 단기간에 카드사와 영세 가맹점이 공정하게 협상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기 때문에, 카드사의 수수료 정책에 소상공인이 끌려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카드 의무수납제는 가맹점이 소액이라도 신용카드 결제를 하려는 소자자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1987년 신용카드업법(현 여신전문금융업법)이 최초로 제정 시행된 이후 카드의무수납에 대한 규정이 신설됐다. 신용카드업법 카드의무수납규정에 따라 가맹점은 소비자가 신용카드 결제를 원하는 경우 반드시 응해야 한다. 또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소비자를 불리하게 대우할 수 없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에서는 불리하게 대우할 수 없다는 점을 보다 구체화해 가맹점수수료를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부담하지 못하도록 명시했다.

세원확보와 소비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소득공제, 복권당첨 기회 등을 제공하면서 소비자의 카드 발급과 사용 규모가 급증했고 가맹점수도 크게 늘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민간소비지출중 신용카드 이용금액 비중은 1999년 7.9%에서 2017년 70.3%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2000년 중반 카드사태 이후 수수료 인하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면서 의무수납 폐지 의견도 높아졌다.

카드의무수납 폐지 논의는 그동안 꾸준히 있었다. 2008년 이후 소비자의 카드 거래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금지한 여전법 관련조항을 삭제하자는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또 1만원이하 소액결제에 한해 거부를 허용하자는 내용의 개정안도 있었다. 

그러나 가맹점에서 카드수납을 거절할 경우 소비자들은 편리한 지급결제수단 이용이 제한되고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 또 가맹점 입장에선 카드 관련혜택은 받으면서 물품가격은 그대로 유지돼 사실상 소비자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따라 정부는 소비자 혜택은 유지하되, 영세중소 가맹점 등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환해 적격비용 및 우대수수료율 도입 등의 정책을 폈다. 

의무수납제 폐지 논의가 재점화된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맹점, 카드사, 소비자 등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을 될 수 있는 관점에서 정책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가맹점은 비용부담을 완화하고 매출액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소비자는 편리하고 저비용의 지급결제수단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카드사 역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기반 하에서 가맹점과 소비자 모두에게 유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구정한 연구위원은 신용카드 의무수납제 폐지를 추진한다면 그 목적을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가맹점의 비용부담을 완화하는 관점뿐만 아니라 소매지급 결제시장을 보다 편리하고 안정적이고 비용부담을 적게하는 방안을 마련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소매지급 결제시장에서의 혁신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핀테크를 활용한 지급결제수단의 발달도 수반돼야 한다. 또 현금영수증 의무화 및 탈세조사를 강화하는 등의 보완조치를 마련하고, 독과점업종 등에서 가맹점이 소비자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전가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보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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