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인천교구 소속 신부 한분이 2일 페이스북을 통해 “신앙은 처세가 아니다. 실존이고 결단”이라고 적었다. 불교, 가톨릭, 개신교를 불문하고 제사보다 젯밥만을 좇는 종교계 일탈을 걱정하면서 한 직설이다. 이어 이 신부는 “예수의 이름으로 자리를 받았으면, 예수처럼 포용하고, 예수처럼 찾아가고, 예수처럼 더 근본적인 문제에 맞닿아야 한다”고 외쳤다. 

갑돌이와 갑순이에게 종교인이 권력인 것처럼, 우리네 이웃에게 정치인 역시 권력이다. 종교인에겐 하늘이 명한 소임이 있듯, 정치인 또한 국민에게 그 자리를 받았다면, 응당 국민을 포용하고 찾아가야 한다. 필부필부(匹夫匹婦)가 해결하기 힘든, ‘더 근본적인 문제’에 답을 줘야 하는게 정치인의 사명이다. 그런 이유로 정치인에게 ‘처세’에 목매지 말고, ‘실존’ 속에서 ‘결단’하라는 국민의 요구는 천명(天命)과도 같다.

외관상 실타래처럼 꼬인 상태, 그 이상으로 얽히고설킨 정국이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을 둘러싼 극우 언론·정당과 집권여당 간 전쟁이 한창이다. 보수 언론·정당이 나서 양극단의 치수조정을 시도하지만 힘도 부치고, ‘처세’ 수준의 양비론만 반복할 뿐이다. 

보다 아픈 지점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부정하지만, 정부여당 내에서조차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행정부내 관료 주류가 ‘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들이지 못하게 막고있는게 문제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결단’이 늦춰지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차, 국정지지율 80%대였던 1년차에 못했던 근본적 개혁을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복잡한 듯 보이는 정세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피아 식별이 아주 명확한 전선이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논란을 얘기했지만, 지금 벌어지는 여야간 모든 정쟁의 대상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1%에 불과한 부자기득권을 보장하는 정치·경제 구조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99% 다수 중산층·서민을 바라보며, 담대한 개혁조치를 속도감있게 추진할 것인가로 수렴한다. 후자만이 대한민국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정부는 ‘조급증’이란 딱지를 붙였다. 

개혁을 갈구하는 이들이 조급한게 아니고, 정부의 개혁조치가 지나치게 더딘게 진실이다. 국세청 자료(2016년 귀속)를 분석한 정의당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0.1%(1만8000명)의 1인당 평균 근로소득은 6억6000만원인 반면 하위 10%(177만4000명)의 그것은 69만원에 불과했다. 양자간 근로소득 격차가 1000배에 가깝다는 통계수치는, 우리사회 계층간 양극화가 극단적인 수준까지 심화됐음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더 기막힌 사실은 상위 0.1%의 근로소득이 하위 25%(443만5025명) 근로소득과 맞먹는다는 통계다. 이쯤되면 대한민국은 인간존중이 통용되는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니라, 양육강식법칙만 창궐하는 ‘정글’이다. 정부란게 외형상 존재하지만, 사실상 무정부상태로 봐야 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근로소득 이외·배당소득·이자소득의 부자편중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상위 0.1%(5만2083명)의 배당소득은 7조2896억원으로 전체 배당소득의 절반이상(51.75%)이다. 개미 그리고 중산층까지 참여하는 주식시장에서 0.1%(8915명) 부자가 배당소득을 독식한다. 은행예금·채권투자에 따른 이자소득도 예외가 아니어서, 상위 0.1%(5만2083명)가 전체 이자소득의 17.79%를 가져갔다. 반면 자산이 적은 하위 10%의 1인당 평균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은 각각 28원, 79원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과감한 개혁을 촉구하는 국민에게 ‘조급해하지 말라’며, 결단을 미룬게 문재인 정부다. 포용하고 찾아가야 할 국민은 안중에 없고, 극소수 부자의 눈치만 보는 정당이 집권여당이다. 행정부내 관료 주류가 세를 불리며, 개혁입법 발목을 잡는 사례도 늘었다. 

이자·배당 소득에 대한 금융소득 종합과세 부과기준을 낮춰 부자증세를 ‘찔끔’하자는 재정개혁특별위원회 권고안을 기획재정부가 무산시켰다. 보유세를 강화해 ‘부동산투기공화국’ 오명을 벗자는 권고안을 마사지한 것도 기재부다. 공시가격 현실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안하는 주된 이유는 토건세력과 이해를 같이하는 국토교통부 관료의 태만 탓이다. 금융공공성은 팽개치고, 재벌기업에게 은행의 뒷문을 열겠다는 금융당국 행태를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나서 독려하기까지 한다. 검찰과 법원에 여전히 똬리를 틀고, 저항의 기회만 엿보는 적폐집단이 손발가락 더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래선 문재인 정부는 성공하지 못하고, 문재인 대통령 또한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없다. 촛불정부 출범일 2017년 5월10일,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1만원’이란 대통령의 한마디에 적폐관료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국민의 명령이었기에 대놓고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집권여당의 정치력 부재에 극우 언론·정당의 사활을 건 공세가 더해지면서, 적폐세력이 숨을 쉴 공간이 열렸고, 개혁추진동력 또한 현저히 떨어졌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1% 기득권집단의 특권을 옹호하는 정치세력·관료집단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유는 대통령이 ‘근본적인 문제’를 ‘결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99% 중산층·서민이 원하는 대통령은 1% 기득권집단의 탐욕을 억제하고 제재하는 강한 지도자다. 물리력이 아닌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적폐집단을 제압하고, 관료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대통령이다. 양육강식이 아닌 인간존중이 최우선 가치가 되는, 정의가 숨쉬는 공동체의 토대를 만드는 그런 대통령이다.

‘처세’에 연연하지 않는 대통령,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결단’을 내리는 대통령, 국민의 요구를 천명(天命)으로 받드는 그런 대통령을 보고싶은게 그렇게 큰 욕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