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된다는 주장과 함께 탄력적근로시간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탄력적근로시간제는 사업장 여건에 따라 노동시간이나 형태 등을 조절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특정일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날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정기간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노동시간에 맞추는 방식이다. 2주이내 또는 3개월이내 단위기간을 정해 운용할 수 있다. 2주이내 단위기간으로 운영할 때는 노동자 과반수나 노동조합 동의를 얻어 취업규칙을 바꿔야 하고, 3개월이내는 노조 또는 노동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필요하다.

경영계는 탄력적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현행 2주(취업규칙)~3개월(서면합의)에서 6개월~1년으로 늘릴 것을 주장한다. 업종에 따라 짧은 기간내 장시간노동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 따른다.

탄력적근로시간제 확대? 한국, 아직 논의할 수준아냐

4일 자유한국당 이진복 의원이 주최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합리적인 근무제 방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김성희 교수는 “OECD 평균보다 연간 400시간 더 일하는 장시간 노동국가에서 노동시간단축 흐름을 거스르는 탄력적 시간제 확대는 시기상조다. 주 40시간이 진정한 표준이 될 때에야 비로소 의미있는 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중기이코노미

4일 자유한국당 이진복 의원이 주최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합리적인 근무제 방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김성희 교수는 “노동시간단축 의제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초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 일과 삶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목표에 초점이 모아져 있으며, 실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시간빈곤에 시달렸던 사회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근로시간을 최대 주 52시간까지 허용하는 한국 상황에서 탄력적시간제를 논하는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희 교수는 “지금 한국은 기준노동시간을 단축하는게 아니다. 주 40시간제에는 변동이 없다. 일주일을 5일이라고 보는 비상식적인 행정해석을 바로잡아, 1주 68시간까지 허용하는 체제를 52시간 체제로 정상화하는 국면이다. 이 시점에서 탄력적시간제 확대를 쟁점으로 삼는건 타당성이 없다”며 “예외업종과 5민미만 사업장에 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탄력적시간제를 확대하자는 주장은 과도한 반대급부”라고 주장했다.

“주 40시간이 진정한 표준이 될 때 비로소 논의가 가능하다”

김 교수는 “OECD 평균보다 연간 400시간 더 일하는 장시간 노동국가에서 노동시간단축 흐름을 거스르는 탄력적시간제 확대는 시기상조”라며 “주 40시간이 진정한 표준이 될 때 비로소 의미있는 논의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탄력적근로시간제는 여러 선진국이 활용하고 있으나, 이들 국가의 노동시간은 한국보다 훨씬 적다. 김 교수는 “탄력적시간제는 서구 국가들이 주 40시간미만으로 기준노동시간을 단축할 때 업무공백을 최소화하고 노동시간단축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타협책으로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외국 사례를 보면 탄력적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은 독일 6개월~1년, 일본 1개월~1년, 미국 26주~1년이다. 프랑스는 최대 1년이다. 한국보다 길다. 한국도 국제적 기준에 따라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픽=조한무 기자>   ©중기이코노미

다만, 이들 국가는 장시간노동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일본은 6일 연속근무를 금지하며, 독일은 하루 10시간을 초과하면 안된다. 프랑스는 연간근로시간 제한하는데 1주 40시간에 못 미친다.

경영계, “업종별 특성 고려해야”

이날 업계를 대표해 참석한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이재열 정책연구실장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채효근 전무이사는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탄력적근로시간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IT업계는 위탁업체에서 용역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본사에서 노동시간을 통제하기 어렵고, 시스템 문제로 비상근무도 잦다는 설명이 따른다. 엔지니어링업계에서는 수주방식의 특성상 연중 업무량 변동이 심하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김성희 교수는 “탄력적시간제를 업종 전체에서 확대하는건 과도하지만, 직무별 조정은 여지가 있다”면서도 “직무별 적용에 수반되는 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다. 직무를 엄격하게 구분해 체계화하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부, “노동시간단축은 당위의 과제”

정부는 근로시간단축은 당위 차원에서 물러설 수 없는 과제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하창용 근로기준추진혁신팀장은 “노동시간단축 찬반논쟁이 있는데 단축은 불가피하다. 장시간노동은 산업재해와도 연관된다. 산재 상당수가 휴일근로에 많이 나타난다. 보통 휴일에는 생산직 근로자만 일하고 감독자가 없다. 저출산 문제도 장시간 노동과 연결된다. 노동부는 당위의 과제로서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 팀장은 이어 “주 52시간은 상한선을 설정한 것이다. 외국을 보면 최대시간까지 다 활용하는 기업 많지 않다. 52시간은 최대한도이고, 개별 산업과 기업은 범위내에서 협의해야 한다”며 “한국은 일하는 문화의 수준이 비교적 낮다. 비효율적인 회의와 불분명한 지시에 의해 장시간 야근이 발생한다. 수당을 받기 위해 일을 미루고 야간에 처리하기도 한다. 일하는 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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