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 논의에 물꼬를 텄다. 현행법은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있어 2년이하라는 ‘기간’을 제한한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2년이 지나면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를 기대했지만, 해고와 재고용을 반복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정규직을 원칙으로 하고 비정규직 사용에 사유제한을 둬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의당은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 법제화, 더이상 미룰 수 없다’ 토론회를 5일 열어 관련 입법안을 발표했다. 근로기준법에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제한’ 조항을 신설한다. 노동자 출산·육아로 인한 결원발생시, 정부 복지정책·실업대책에 따른 일자리, 노동자가 학업이수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등 6가지 예외적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한다.

<자료=정의당>

간접고용도 엄격히 제한한다. ‘상시적 업무의 간접고용 금지’ 규정은 상시적 업무 수행을 위해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이 직접 고용해야 하며, 도급·위탁·용역·파견 등 명칭·형태와 상관없이 제3자를 매개 고용한 경우 해당 노동자를 최초로 사용한 때부터 기간의 정함이 없이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

◇간접고용 금지 획일적 적용 현실성 의문=한국비정규노동센터 남우근 정책연구위원은 공공부문은 정부 의지로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지만 민간부문은 자발적 정규직화를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법제도와 행정력을 통해 강제할 수밖에 없다며, 정의당의 입법 취지에 공감을 표했다.

다만, 현재 산업현장을 고려하면 입법과 실제 적용에 대한 가능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남우근 정책연구위원은 “기업활동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해당 기업이 직접고용한 노동자로 수행하도록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각 기업이 가진 전문성, 특수성을 고려한 기업간 협업구조를 모두 단절하는 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인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5일 정의당은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 법제화, 더이상 미룰 수 없다’ 토론회를 열어 관련 입법안을 발표했다.   ©중기이코노미

남 정책연구위원은 “결과적으로 도급이라는 계약형식으로 진행되는 기업활동간 관계가 실질적으로 도급인지, 아니면 도급으로 위장된 파견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파견법상 파견은 별로 없고 계약형식상 도급형태로 광범위하게 간접고용이 이뤄지고 있다”며, “현재 도급과 파견을 구분할 수 있는 법규정은 없다. 근로자파견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이 있긴 하나, 내용이 느슨해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도 최근 노동부에 불법파견 판정기준 관련 법원 판례를 반영해 지침을 개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정부사업은 비정규직 사용 사유 안돼=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하는 사유에서 정부 복지정책·실업대책을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부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실업대책 사업이 많다. 과거에는 이러한 사업이 많지 않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으나, 현재로서는 비정규직으로 인한 불안정 고용을 해소한다는 입법 취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우문숙 정책국장도 정부사업은 비정규직 사용에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사업이 많은데, 지자체별로 직-간접고용 형태가 다를 뿐 아니라 간접고용을 취하는 지자체의 경우 직접고용으로 전환이 안되고 있다. 다문화 센터, 도시녹지 관리원 등 수년간 지속되는 사업에 고용된 노동자가 계속 비정규직으로 남아있다”며, “정부는 모범사용자를 자임하고 있다. 정부사업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진행되는데 비정규직이 남용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정의당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입법안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의당 노동이당당한나라 김영훈 본부장은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은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주요정당이 원칙적으로는 동의했다. 정의당과 민주당, 국민의당은 입법화를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취임이후 올해 안에 법제화를 약속했다”면서 “입법 현실성과 실효성과 관련한 여러 의견을 수렴하겠다. 1차 목표는 발의다. 공론화는 발의에서 시작한다. 이번 입법안은 비정규직 사유제한 논의를 끄집어내는 운동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